사지방에서 여자 동기들이 올린 페북이나 인스타 게시물을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무슨 무슨 공모전에서 무슨 성과를 이루었다, 어떤 대외활동 참가를 했다, 교환학생에 합격했다 등등의 소식, 멋진 이국 풍경과 그곳의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올라온다. 그러나 이 씁쓸함의 정체는 시기, 질투가 아니다. 이 기분과는 별개로 난 축하하는 마음으로 좋아요를 누를 수 있었다.
이건 더 근본적인 문제다. 부조리함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내 가치관과는 다른 삶을 강제당해야 할까. 군대를 무사 전역해야만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된다는 통념은 어쩌다 어떻게, 생겨날 수밖에 없었을까. 난 무엇을 위해 여기 갇혀 오늘을 살고 있을까. '남들 다 가는 군대'? 그게 뭔데? "모두가 하는 군생활"이라는 건 크나큰 착각이 아닐까.
"군생활"은 정의할 수 없다. 그냥 머리 깎고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아니다. 충분히 건강한 한국 남자 모두가 겪는 객관적인 사건으로 치부되지만 사실 매우 특수하고 주관적인 경험이다. 결혼처럼 말이다. 결혼이라는 행위 자체는 흔하지만 그 내막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은가.
입대 후에 걷게 되는 모든 갈림길은 엄청나게 큰 차이를 낳는다. 육군을 예로 들면, 전방과 후방, 몇 군단, 몇 사단, 몇 연대, 어느 대대, 어느 중대와 소대, 어느 생활관과 어떤 보직까지, 거기에다가 입대 시기, 신체 능력, 성격, 무작위 추첨, 인연, 타이밍, 판단, 운, 첫인상, 사소한 실수 등 대부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요소들이 변수가 되어 본인만의 군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먹고 자고 했던 동기마저도 나의 군생활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평가할 수도 없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두가 하는 군생활"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한다고 해서 일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사실 그래서 더 어렵다. 별별 사람을 다 겪는다). 또한 나에게까지 마땅한 일이 되지도 않는다. 낙인이 찍히는 게 두려울 뿐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귀중한 20대의 시간을 갈아버리는 일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군인이 꿈인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러니 군복 입은 청춘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 달라.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일에 책임을 지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신성한 의무는 사라지고 온갖 합리화, 당위성, 억압, 이데올로기의 찌꺼기로 점철된 비극만이 남았다. 무의미한 쳇바퀴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치열하게 버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