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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휘 Aug 22. 2019

절망 속의 평화, 평화 속의 절망 [룸]

#19 지루한 일상에 지친 당신을 위한 영화

  '조이'(브리 라슨)는 17살 때 '닉'이라는 남자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닉은 조이를 좁은 창고에 가두어 밖으로 못 나가게 했고, 조이는 그때부터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된 끔찍한 생활을 무려 7년째 하고 있습니다. 닉은 일주일에 한 번 최소한의 생필품만 조이에게 주었고, 수시로 방에 들어와 성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때문에 감금 생활 중 조이는 아들을 갖게 되는데요. 끔찍한 폭행 때문에 생긴 아이였지만 조이는 아들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키웁니다. 그렇게 태어난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은 조이가 감금 생활을 버틴 이유가 되어주었습니다.

잭 (제이콥 트렘블레이)과 조이 (브리 라슨)

  잭은 방에서 태어난 후 5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방 밖을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잭은 이 세상에 사람은 조이, 닉, 자신이 전부고 방 안에 있는 조그만 TV 속 사람들은 전부 가짜이며, 한 칸의 방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 믿고 있죠.

방에 있는 유일한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잭

  더 이상 잭을 이곳에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탈출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선 잭의 역할이 중요했는데요. 잭이 5살이 되었을 때, 조이는 잭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줍니다. 지금까지 설명해준 세상은 전부 거짓이며, TV 속 사람들은 실존하고, 진짜 세상은 끝도 없이 넓기 때문에 우리는 어서 이 방에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잭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엄마는 거짓말쟁이야!"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조이는 계속해서 잭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잭의 호기심은 커졌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어린아이에게 버거운 임무였을지도 모르지만 잭은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여 엄마와 함께 방을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벌써 탈출에 성공한다고?

  탈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벌써 알려주는 건 스포일러가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신드롬]이나 [패닉 룸], 조금 더 가면 [쏘우 시리즈]처럼 감금과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주인공의 궁극적 목표는 다름 아닌 탈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주 내용은 가학적인 가해자로부터 달아나는 피해자의 이야기이며, 탈출에 성공하면서 영화가 끝이 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조이와 잭은 정확히 영화의 절반 지점에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닉은 검거되었고, 이대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은 거 같은데 아직 영화는 한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더하려나 싶을 때 [룸]은 보통의 스릴러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탈출을 했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대로 만사 해결은커녕 조이, 잭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에게 집중되는 세간의 관심, 가족 간의 엇갈린 애정, 트라우마, 여전히 녹록지 않은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 조이와 잭은 7년, 또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라는 공백을 뛰어넘어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요. 영화는 완전히 낯선 세상 밖으로 나온 잭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이 겪게 되는 현실을 실감 나게 표현합니다. 조이에게도 탈출 후의 삶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행복할 줄 알았어"라는 조이의 대사가 많은 것을 설명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조이, 그리고 잭


뛰어난 전달력

  [룸]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과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그건 바로 과한 표현이 없다는 것인데요. 조이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도, 탈출 후 겪는 스트레스 때문에 미쳐 날뛰는 장면도, 감동을 쥐어짜 내는 억지 눈물도 없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레니 에이브러햄슨은 말초적인 자극 대신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영화는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진정으로 하려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관객은 조이와 잭이 느꼈을 감정을 한층 더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탈출 이후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고 감동이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영화의 초반에서 감금 생활이 얼마나 끔찍한지가 잘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감동적인 스토리를 들려주면서도 [룸]은 스릴러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초반엔 감금당한 피해자의 심리와 고통스러운 일상을 잘 묘사한 것은 물론이고 탈출을 하는 과정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감금-탈출극이 가진 스릴러적 긴장감을 영화가 매우 잘 활용한 덕에 탈출 후 세상 앞에 놓인 조이와 잭의 성장담은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아 [룸]은 세계 유명 영화제에 이름을 올렸고, 조이 역을 맡은 브리 라슨은 무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남다른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 재미와 감동 모두 잡은 영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영화, [룸]이었습니다.



글: 정재훈

이미지 출처: 영화 [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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