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오'는 구두 디자이너가 꿈인 고등학생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다카오는 수업을 땡땡이치고 공원으로 가서 구두 그림을 그리며 오전을 보냅니다. 비가 내린 어느 날에, 다카오는 항상 가던 정자에서 한 여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초콜릿과 맥주를 같이 먹고 있던 그녀는 어딘가 낯이 익었습니다. 마치 다카오처럼 원래 가야 할 곳에서 도망쳐 나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죠. 혹시 어디서 자신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없다며, 제목을 알 수 없는 시를 읊어주며 자리를 뜹니다.
그 날 이후로도 비가 오는 날마다 다카오는 성실하게 수업을 빼먹고 공원으로 갔고, 그때마다 그녀도 공원에 와 있었습니다. 얼굴을 자주 보다보니 둘은 자연스럽게 친해졌지만, 다카오는 여전히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확실한 것이라곤 본인은 학생이지만 그녀는 가까워지기엔 너무 먼 어른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 정도였죠.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학교에 갇혀있는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주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카오와 유키노 자주 내리던 비는 한동안 내리지 않았고, 짧았던 일탈도 그렇게 끝이 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다카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는데요. 수수께끼의 그녀는 다카오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고전 문학 선생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날 읊었던 시는 그녀가 가르치는 고전 문학 중 하나였죠. 그녀의 이름은 유키노. 알고 보니 유키노는 3학년 학생들이 퍼뜨린 불미스러운 소문 때문에 강제로 학교를 관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고, 그로 인해 충격을 받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음이 착잡해진 다카오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공원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혹시나 하는 예감은 다행히도 적중했습니다. 이제야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 처음 만난 날처럼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고, 둘은 함께 빗속을 헤쳐나갑니다.
관람 포인트 #1 영상미
[언어의 정원]은 [너의 이름은]을 제작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입니다. [너의 이름은]을 보았다면 잘 알겠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의 가장 강렬한 매력은 사진만큼 정밀하고 실사보다 더 쨍한 그림체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을 그린다면 신카이 마코토는 빛을 그린다고 할 정도로 그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죠. 장마철이 배경인 [언어의 정원]은 그중에서도 가장 작화가 좋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쾌청하게 내려앉은 장마철 도쿄의 공기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게 그림이라고? 관람 포인트 #2 상처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다카오와 유키노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사회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다는 점인데요. 다카오는 꿈이 있지만 사회의 구조와 편견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못하고 있고, 유키오는 학생들이 꾸며낸 거짓 소문 때문에 해명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평범한 삶을 잃었죠.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모두가 멋지게 시련을 딛고 성장하지는 못합니다.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 두 사람은 아무도 찾지 않는 비 오는 날의 공원으로 몸을 피했고, 그곳에서 서로를 만나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합니다. 딱히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개인의 존재만으로 상처는 아물었습니다. 두 사람의 서툰 성장담은 아름다운 영상과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관람 포인트 #3 최고의 OST
영상미도, 잔잔한 스토리도 좋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OST인 [Rain]이 나오는 엔딩신이 아닐까 합니다. 두 주인공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할 때 나오는 이 곡은 [언어의 정원]이 표현하고자 하는 장마철의 감성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비가 내릴 때면 [Rain]이 생각날 겁니다.
링크 첨부: https://youtu.be/kMaj3GZsX_4
[너의 이름은]을 재미있게 보았다면, 꿉꿉한 장마철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면, 올해 10월에 개봉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가 기다려진다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 [언어의 정원]입니다.
글: 정재훈
이미지 출처: 영화 [언어의 정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