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해져갔다.
나에게 그 사람은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막상 그와 이별을 하고 보니 내가 그에게 마음을 내어준 부분이 너무 많았다. 정이나 사랑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의 기능적인 부분이었다. 나는 그에게 많은 부분 의지하고 있었고, 그 의지하는 부분은 그에게 넘겨 뒀기에 한없이 약해져 있었다. 그런데 홀로서기를 시작하니 나의 약해진 부분을 다시 강화시켜야 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했다. 남녀가 서로 만나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약점과 부족을 채워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어떤 부족을 갖고 있든 나는 그의 강점에 기대어 있었다.
나는 그가 비운 공간을 나로 채워야 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다. 나를 아무리 채운다 한들 나는 혼자였고, 어떻게든 부족한 부분이 있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배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끊임없이 나의 한계를 깨달으며 여기까지 버텨왔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를 수차례 깨달으며 안타까워 해야했고, 그 부족한 부분이 주말에 하루 만나는 것으로 절대 채워지지 않음을 여실하게 느끼며 지내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끊임없이 나를 납득 시키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우울해졌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끝없는 한계를 느낀다는 것은 우울했다. 나는 점차 나를 포기하고 싶어졌고, 많은 부분을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 소중한 나의 아이들까지도.
기도했다. 어떻게든 도와달라는 막연한 기도를 했다. 하지만 깨달았다.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는 새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새 힘은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포기하고, 나를 방치한 모든 것으로부터 거부하고, 나는 이제 내 삶을 살아나가기로 하였다. 나를 새롭게 갈고 닦고, 내 안의 묵은 때와 먼지들을 털어내고, 나를 나로서 나답게…. 살아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렇게 새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