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날자,
박제(剝製)된 날개에 다시 살 돋고 피 돌아
다시 한번 훨훨 날아보자꾸나
화평(和平)과 상생(相生)의 세상 그 푸른 하늘
높이, 더 높이.
-이상 산문집 '날개' 부분 인용
어린 손자 품에 안고 천마총(天馬塚) 입구 근처 배롱나무 주위 서성거리고 있던 그날, 한여름이지만 하늘은 이글거리는 태양 대신 한바탕 비라도 거세게 퍼부을 양인지 온통 검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함께 천마총 찾은 아내와 딸에게는 그 안 둘러보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둘러봤던 데다 어린 손자가 어두운 내부로 들어갔을 때 자칫 놀라 울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들의 관람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두 사람만 들여보낸 것이었다.
칭얼대는 손자 어르며 무구(無垢)한 아이의 얼굴과 어두운 하늘, 그리고 능원(陵園) 오가는 사람들 망연히 지켜보다 백일홍 붉은 꽃잎에 시선이 닿던 순간 마치 뜨거운 그 무엇에 닿기라도 한 듯 불쑥 일던 생각, 그 이전 천마총 관람했을 때도 들었던 그것이 다시금 되살아나던 것이었다.
화룡점정(畵馬點睛), 마지막 붓 들어 말에 눈동자 그려 넣은 늙은 화공(畵工)은 그제야 내내 참았던 숨, 길게 내쉬었다. 몇 해 전부터 손이 떨려 이미 붓을 놓은 그였다. 그랬던 그가 차마 청탁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붓을 잡은 것은 고귀한 분의 의뢰라서가 아니라 장니(障泥)에 그려진 그림은 무덤 속에 안치되어 봉인(封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그의 삶이 그러할 것처럼.
돌이켜보면 그가 붓을 잡은 이후 지금껏 그린 그림들 꼽으면 족히 수백여 점 될 것이나 대개가 고관이나 부호들의 집안 벽면 장식하는 걸개들이나 사찰의 벽화, 그리고 솜씨 좋은 도공(陶工)들 중 그림에 자신이 없는 자들 대신해 도자기에 그려준 그림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림들은 그 수명이 당대(當代)에 그치고 말거나 길어봐야 백여 년이 채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무릇 화공이라면 대(代) 이어가며 사람들의 눈 즐겁게 하고 종래에는 가슴에 새겨둘 만한 그림 몇 점쯤은 남겨야 할 것이나 눈 침침하고 손까지 떨리는 지금껏 당대에 으뜸가는 화공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흡족하다 말할 그림 한 점 변변히 남기지 못한 터였다. 그런 까닭에 처음 그림 의뢰받았을 때 재주가 뛰어난 다른 화공의 이름 거명하며 완곡하게 사양했으나 어느 순간 이번 그림을 그야말로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기고 그간 쌓아온 화공으로서의 내공(內工) 고스란히 쏟아부으리라는 생각이 들던 것이었다. 화공으로서의 욕심이랄 수도 있는 그 생각과 함께 떠오르던 하나의 형상, 마치 청탁받기 이전부터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던 그것. 그는 추호의 망설임 없이 천마(天馬)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화공(畫工)은 하고많은 그림들 중 하필이면 천마를 그렸을까?
모처럼 안긴 할아비 품이 불편했던 것인지 몹시도 뒤척이던 손자가 고분 근처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잠들어 다소 떨어진 곳에 있던 의자에 앉을 요량으로 걸어가다 손자의 팔딱이는 심장 박동이 내 심장께에 온전히 느껴지던 순간 불현듯 든 생각이었다.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과 그에 따라 사라지는 것들과 전해지는 것들, 그리고 사라진 듯 보여도 기실(其實)은 누대(累代)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것에 관한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오르던 것이다.
천 년 전, 천마를 그린 화공의 의도(意圖)와 비록 그 자신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의 그림은 그렇듯 온전히 전해져 지금의 내가 그 뜻 헤아리고자 하는 것과 나와 딸, 그리고 손자가 심장 박동 통해 그 생(生)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한꺼번에 겹쳐져 떠오르던 것이다.
화공이 비록 자신은 죽고 없을 것이라도 서기(瑞氣) 내뿜으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마 통해 후대(後代)에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찬란했던 천 년 왕국 신라(新羅)도, 화공 그 자신도 유한(有限)하리라는 것 알면서도 그에서 무한(無限) 지향(指向)하고 싶던, 그리하여 단순한 이어짐이 아니라 그렇듯 날개 활짝 편 채 비상(飛翔)하고 싶던 그 무엇. 늙은 화공은 완성된 그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비록 장니(障泥)에 그려졌지만 의뢰자(依賴者)는 이를 실제 말에 장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었을 때 그 무덤에 여타의 부장품(副葬品)들과 함께 묻을 것이라고 했다. 그 용도가 그림을 그린 한 이유이기도 했으나 그보다 화공은 자신의 마지막 역작(力作)인, 먼 훗날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질지 알 수 없는 이 그림에 여타의 껴묻거리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담겨 있음을 알아주기 바랐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그림에 자신의 간절한 기원 담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봉인(封印) 풀릴 때 신라(新羅), 신라인(新羅人)의 꿈이 그 자신의 당대만이 아니라 시대 초월하여 모두가 품은 소망이기를 바라서였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와 벽이 허물어지고 더불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미명(未明) 뚫고 새 날, 새 아침으로 밝아올 때 비로소 천마는 서기(瑞氣) 뿜으며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 날아오를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천마(天馬)는 그의 꿈이기도 하고 모두의 꿈이기도 한 그 간절한 염원에 바치는 자신의 마지막 헌사(獻辭)인 것이었다.
토함산(吐含山) 자락쯤인가?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림 건네기로 약속한 때가 얼마 남지 않아 조만간 그림은 자신의 손을 떠날 것이고 또 얼마 뒤에는 무덤 속에 묻힐 것이다. 봉인이 풀릴 때까지 그림은, 천마는 좁고 어두운 그 안에서 얼마나 긴 세월 인내(忍耐)하며 갇혀있어야 할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천 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기다린다 한들 날아오르려는, 날아오르는 그 날갯짓을 가둘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밤새 그린 그림 앞에 두고 상념(想念)에 잠겼던 화공이 한껏 침침해진 눈 문지르자 마주 보이는 동창(東窓)이 흰 빛으로 희붐했다. 또 한 번의,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후드득, 굵은 빗방울 들더니 이어 내내 참았던 울음 기어이 터져 나오듯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보다는 품에 안겨 잠든 손자가 행여 비라도 맞을까 싶어 급한 걸음으로 관광안내소 처마 아래로 걸어가 비를 피했다. 아내와 딸은 손자 내게 맡겨두고 좁은 무덤 안에서 무엇을 그리도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일까? 문화해설사의 인솔로 한 무리의 관광객에 섞여 입장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도무지 나오려는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 박물관이나 전시관 관람할 기회도 좀처럼 없었지만 설령 그런 기회가 있어도 스쳐 지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자세여서 의아한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모녀(母女)는 그곳 무덤 안에서 오래 보아야만 비로소 보이는 그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를 그린 오래전 화공의 내밀한 의도(意圖) 이리저리 짐작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선 채로 꼼짝없이 비를 맞고 있는 백일홍(百日紅) 붉은 꽃 망연(茫然)히 보고 있다 눈길 거두어 팔에 안겨 태평스럽게 잠든 손자의 얼굴 본다. 천진무구(天眞無垢)는 다름 아닌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 문득, 내전(內戰)으로 얼룩진 중동(中東) 한 나라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자비한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되던 아이들, 어두컴컴한 잔해더미에 몇 날을 갇혔다가 피와 먼지가 범벅이 된 얼굴로 가까스로 밖으로 끌려 나온 아이들은 주검이 된 부모 곁에서 이미 얼마나 울었는지 울지는 않았지만 그 얼굴에는 마른 눈물자국이 선명했다. 대체 누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아이들에게서 그 부모를 빼앗고 무구(無垢)해야 할 아이들의 얼굴과 마음에 그토록 잔인한 생채기 남기려 드는 것인지 분노(憤怒)를 넘어 그와 그것들에 증오(憎惡)의 마음까지 들던 것이었다. 폭격한 자들과 그를 명령한 자들에게도 어리든 성인이든 자식이 있을 것이고 밤마다 그들의 이마에 굿나잇 키스나 매사 조심하라는 염려의 말들 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던 것이었다. 더불어 훗날 그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세상은 피 묻은 입과 손으로 어떻게 용서와 사랑을 말할 수 있을 것인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천 년 전의 화공은 이미 시대와 장소 불문하고 끊임없이 불어대는 광풍(狂風)을 미리 경계한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그가 천마(天馬)를 그렸던 것은 그 날갯짓으로 미친바람 잠재우고 나아가 그것을 상생(相生)과 공존(共存)의 바람으로 바꾸어 그로써 힘차게 날아오르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에의 소망 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천마는 단순한 하나가 아니라 화합(和合)과 상생(相生)의 삶 즐거이 노래하는 세상을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마다에 자리하고 있을 수없이 많은 염원(念願)들의 총합(總合)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천 년이 지난 지금이 아니라면 또다시 천 년 뒤 언젠가는 기어이 그런 날이 도래(到來)하고야 말 것이라는 그런-.
언제 내렸느냐는 듯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날이 개자 하늘은 더 맑아보였고 백일홍(百日紅) 붉은 꽃은 더 붉어보였다. 짧은 잠에서 깬 손자가 뒤척여 어르자 까르르, 웃는데 천사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 입구 쪽이 다소 소란해 쳐다보니 한 무리의 관람객이 걸어 나오고 그중에 다소 상기된 표정의 아내와 딸이 보였다.
환청(幻聽) 같은 것이었을까? 어디선가 날개 퍼덕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아 올려다본 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참으로 고즈넉한 여름날 오후 한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