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진이 서울에서 주말을 보내는 법 (3)
나의 주말은 대체로 여유롭다.
토요일은 카페인이 들어간 진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이다. 언제부턴가 조금의 카페인에도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에든 나이 듦을 핑계 삼기 시작하면 점점 할 수 있는 게 없어질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예전 같지 않다는 말 따위는 실수로라도 내뱉지 않도록 유난스레 조심하던 터였다. 하지만 두 가지만큼은 세월의 흐름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카페인에 취약해졌다는 것과 잠이 줄었다는 것. 이 둘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내게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왔다. 잘 마시던 커피를 갑자기 끊기는 어려웠기에 처음에는 연하게 내려 마시는 정도로 타협했다. 하지만 물을 잔뜩 탄 숭늉 같은 맛의 커피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분명 소변으로 배출되고도 남았을 시간인 것 같은데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미량의 카페인 때문인지, 카페인에 과민한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마음 때문인지 커피를 조금이라도 마신 날에는 영락없이 밤을 설치곤 했다.
유일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은 다음날에 출근할 필요가 없는 금요일과 토요일뿐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 오래된 습관 때문에 월요일부터 목요일 동안 커피를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디카페인 커피를 사 마시거나 페퍼민트 티 그것도 아니면 맹물을 텀블러에 잔뜩 담아 빨대로 쭉 들이켰다. 빨대를 타고 빠른 속도로 들어오는 차가운 음료는 카페인을 잠시나마 대체하는가 했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커피의 자유로운 섭취가 제한되자 내가 이렇게 커피를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갈망은 점차 심해졌다. 보상심리로 토요일이 되면 나는 어떻게든 맛있다는 카페를 찾아 진한 커피를 시켜 들이키곤 했다. 일주일에 한잔 남짓 마시는 귀한 카페인이니 아무거나 마실 수 없다는 괜한 고집이었다.
몇 달 전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수채화 수업을 주말반을 신청했다. 텅 빈 주말은 미술관으로 카페로 채워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시간을 가져가 줄 뭔가가 필요해 반쯤은 충동적으로 결정한 선택지였다. 첫날 열 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둥그렇게 이젤을 펴고 앉아있고 가운데는 그날 그릴 정물이 놓여있었다. 어느 날은 화병과 나뭇가지, 어느 날은 과일 바구니와 와인병, 어느 날은 잔뜩 구겨진 주전자와 멀티탭이 올려져 있었다. 잘 어울리기도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기도 한 조합들이었다. 볼 것도 없이 강의실에서 내가 가장 막내였다. 생각보다 수강생의 연령대가 매우 높았다. 서초, 교대 근처에 사는 은퇴한 여유 있는 어르신들이 주 수강생인 것처럼 보였다. 하긴 황금 같은 토요일에 점심 4시간 연속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할 것도 많고 갈 데도 많은 젊은 사람들이 선뜻 신청하기 어려울 테지. 나를 제외한 수강생은 이미 수채화 강좌를 여러 해 들어온 고정 멤버인 듯했다. 젊은 학생이 여기까지 그림을 배우러 왔다고 다들 반겨주었다. 그 어느 모임에서도 막내인 적이 오래라 머쓱해 괜히 웃음도 나왔다. 그림을 가르쳐주는 교수님도 회원들과 비슷한 정도로 연세가 지긋했다. 수업은 차분했고 조용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첫날 딱 봐도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것 같은 내 스케치북을 보고는 옆자리 어머님이 본인 종이를 써보라며 한 장 뜯어 주었다. 이 종이가 물감도 잘 머금는다고 발색도 좋아 다들 이 브랜드를 쓴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비슷하게 생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집에 와 검색해보니 뜯어 준 종이 한 장이 내가 산 스케치북 한 권의 가격과 비슷했다. 나는 그렇게 비싼 종이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 누구는 한 권에 몇 만 원짜리 종이를 쓰고 있는 세상이구나. 나도 괜히 뒤처지고 싶지 않아 몇 만 원짜리 스케치북을 주문했다. 다행히 내가 부릴 수 있는 정도의 사치라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 스케치북을 쓰니 그림이 더 잘 그려지는 것 같았지만 완성된 그림을 보면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면 근처 카페를 찾았다. 예술의 전당 근방의 웬만한 개인 카페는 다 가봐서 그날은 어딜 가야 하나 방황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서초역 부근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사거리에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길래 자세히 보니 1층에 카페가 있었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니. 카페라고 알아본 것이 대단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카페였다. 입구에 작게 놓인 입간판만이 이곳이 커피를 파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의 남자 바리스타가 등을 지고 딸그락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잘못 들어온 건가? 우연히 찾아낸 카페 위치, 텅 빈 내부, 장발의 바리스타가 섞여 어딘가 모르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커피에 진심인 바리스타가 차린 스페셜티 카페였다. 가격은 더더욱 스페셜했다. 가장 싼 커피도 한잔에 만원을 넘었고 어디 구하기 힘들어 매번 경매를 통해 겨우 얻는다는 원두를 사용한 커피는 한잔에 3만 원이나 했다. 저렴한 커피를 (사실은 전혀 저렴하지 않은) 주문하기에는 눈치가 보여 3만 원짜리 커피를 주문했다. 아무도 눈치 주는 이가 없었는데도 괜히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비싼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비싼 커피를 마시는 주말이었다. 매스컴에서는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라 젊은 사람들이 아파트 사기를 포기하고 비싼 차나 비싼 가방을 산다고 했다. 나는 비싼 차나 비싼 가방 사기를 포기하고 비싼 스케치북과 비싼 커피를 샀다. 커피와 스케치북을 합치면 10만 원에 가까웠다. 10만 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은 세상에서 10만 원으로 누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사치였다.
게이샤라 불리는 원두라고 했다. 마침 손님도 없고 하니 원두를 좀 넉넉히 갈아 반은 아이스 반은 따뜻하게 내려준다며 바리스타는 선심을 썼다. 선반에 가득 찬 예쁜 잔 중 하나를 골랐다. 주인은 내가 고른 잔을 꺼내 숙련되지만 화려하지 않은 군더더기 없는 자세로 커피를 내렸다. 커피에서는 신기한 맛이 났다. 커피와 차 어느 중간의 맛이었다. 커피와 홍차를 반씩 섞어 마시면 비슷한 맛이 날 것 같았는데 누군가는 이 원두를 사기 위에 큰돈을 내고 경매에 참가해 원두를 구해오고 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그날 밤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던 이유의 팔 할 정도는 주는 대로 홀짝홀짝 받아마신 커피 때문이었지만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신기함도 한몫 거들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던 비싼 스케치북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비싼 원두도 있었다. 내가 모르는 와인은 더더욱 많을 것 같다. 내가 모르는 보석과 내가 모르는 음악은 또 얼마나 될까? 어쩌면 누군가는 커피맛이 나는 와인을 비싼 값에 사거나 기린의 털로 만든 귀한 붓으로 그림을 그릴지 모른다.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궁금해졌다. 그저 그런 동네에서 평범한 취향을 쌓으면 자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올린 것 같은 그들의 굳은 취향과 선호가 부럽고 샘이 났다. 깊고 세밀한 취향이 대단해 보였고 또 그 취향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부러웠다. 그런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