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이건 처음 보는데 무슨 패션일까 싶다가도, 전체적으로 세련되게 잘 소화해 낸다. 어제만 해도, 아이보리 테의 선글라스, 하얀 셔츠, 그리고 옅은 파란색 청바지와 아이보리 운동화를 멋지게 소화했다.
마른 몸매여서 옷 태가 좋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모든 마른 사람이 당신과 같은 느낌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당신이 가진 특유의 꼿꼿함, 그것은 당신이 허리를 곧게 세워서일 뿐만 아니라, 몸이 천근만근 무거울 때도 고고함을 잃지 않으려는 듯한 당당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최근에 다시 생각난 건데, 당신의 패션 중 가장 멋진 모습은 주일에 가장 먼저 선 보인다. 새로 옷을 산다든지, 새로운 조합을 시도할 때에도, 가장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을 주일에 하고 간다. "하나님께 가장 멋진 모습을,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다"는 말을 당신은 예전부터 하곤 했었다.
또, 당신은 적어도, 옷이나 액세서리에 있어서 소위 '명품'을 함부로 사지 않는다.
이게 요즘, 소위 '멋좀 부린다는' 여자들과 당신이 가장 다른 점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나도 교회 모임에서 여자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요새 여자들 많이 오는 자리에 갈 때는
가방부터 신경 쓰게 되더라고.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힌 가방을 들고 가야
나도 기가 안 죽는 거야.
그만큼 명품은 이제 특별한 누군가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없으면 창피한 것이 되어버렸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패션의 핫 트렌드와 꾸준히 대립각을 세워온 내가, 얼마 전부터
'아, 이 옷이라면 당신이 좋아하겠다'
하고 꽂히는 일들이 생겼다. 내게 '아름다움의 기준'이 생기게 된 것은, 당신의 경우에는 천부적인 안목이 갑자기 내게 생겼을 리는 없고, 당신이 보여주고 입혀주는 옷들에 노출되면서 생긴 학습효과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옷들은 화려하지 않더라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 티가 나서, 마치
나는 로고를 안 보더라도 입어보면 내가 왜 비싼지 알 수 있어요~
라고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듯한 옷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옷들을 당신에게 한번 입어보라고 했을 때,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내가 낼 테니 비싸더라도 잘 어울리면 사자는 쪽은 오히려 내 쪽이다.
하지만, 매번 당신은
내가 브랜드를 안 산다고 해서,
패션을 모르고 명품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비싸도
다 사달라고 할 거예요!
라며 씨알도 안 먹힐 엄포를 놓고서는, 한사코 사지 않는다. 번번이 그런 실랑이 끝에 당신의 말을 따르게 되고, 결국 이때까지 당신에게 명품 옷 한 벌, 가방 하나 사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