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하며 누가 내 손을 잡아챘다. 나는 6호선 공덕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공덕역에서 누가 나를 알아보는 걸까? 찰나의 두근거림.
꽃미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구)꽃미남이었던 고등학교 동창 U였다. 큰 키에 하얀 피부를 가진, 웃는 게 참 예뻤지만 잘 웃지 않았던 그 U였다.
“어!!!!”
“와~~~”
“이야~~~”
우리는 웃음 띈 신기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똑같냐? 늙지도 않냐?”
U가 신기한 듯이 나를 보며 예전에 많이 들어 익숙했던 말투로 물었고, 나는 “너는 아저씨 다 됐구나.”라고 솔직하게 U의 얼굴을 보고 느낀 바를 내뱉었다. 그러자 U는 ‘이 새끼는 여전하구나’하는 얼굴로 내 어깨를 툭 치며 웃고는 ‘야- 이제 서른이다, 마.’하곤 씨익 웃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창생들이 좋아하던 잘생긴 얼굴과 큰 입으로 활짝 웃는 그 웃음이었다. 나이는 들었지만, 웃음은, 맑은 얼굴로 활짝 웃는 그의 밝은 웃음은, 여전했다.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지는 것까지도.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9년 겨울,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분명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내 성격상 고등학교 졸업 후 연락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그에게 부고를 전하진 않았을 텐데, 그는 권과 박과 함께 그 자리에 와주었다. 우리의 7년여의 공백에도 아랑곳 않고.
내가 기억하기로 우리가 가장 가깝게 지냈던 고등학교 시절조차 우리 둘은 그렇게 막역한 사이가 아니었고, 그마저도 U가 중간에 전학을 가게 되면서 길게 이어지지 않았기에 그가 와준 것은 사실 내겐 조금 의외의 일이었다. 상실을 알기 전의 나였다면, 분명 U와 같은 선택을 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는 나와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사람이었고, 항상 다른 선택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우유부단함 속에서 단호한 선택과 행동을, 나는 반대로 단호함 속에서 우유부단한 선택과 행동을 했었다.
아마 그랬기에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한 채, 일정 거리에서 더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으레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른을 향하고 있어서일까, 우리의 대화는 관계의 공백과 서로의 다름을 뛰어넘어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졌음에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를 이해시킬 필요가 없는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과 반가움에서 피어나는 대화의 즐거움을 U도 조금 더 이어가고 싶었는지, 내게 맥주 한 잔을 제안했다.
“야, 너 괜찮으면 맥주 한 잔 할래?”
“좋지, 안 그래도 오늘 맥주 한 잔 먹고 싶었는데. 근데 너 내일 출근해야 되지 않냐?”
“괜찮아, 마. 적당히 마시면 되지. 너 집 어디였지? 아직도 여기 사냐?”
“어, 여기 살지. 그럼 여기서 내리자.”
우리는 내가 내려야 할, 우리의 풋풋하고 치기 어린 학창 시절이 곳곳에 녹아있는 동네에 함께 내렸다.
“와, 여기 진짜 오랜만이네.”
“요새 이쪽 잘 안 오냐?”
“나는 잘 안 오지. 올 일이 없으니까.”
“에, 애들 잘 안 만나?”
“뭐 요새는 잘 못 보지.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까. 그리고 봐도 여기선 잘 안 봐.”
세월 참 무상하게 많이도 변했다 싶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U와 한 치킨집에 자리를 잡았다. 부모님이 종종 포장을 해왔고, 이제는 내가 종종 포장을 해가는, 트렌디한 일본식 술집 바로 옆의 동네 주민들이 항상 북적이는 오래된 곳이었다.
“야, 너 A 얘기 들었냐?”
“B는 잘 지내고? 너도 이제 연락 안 하냐?”
“너 C 결혼한 건 아냐?“
…
기억의 저편 어딘가에 켜켜이 먼지 쌓인 이름들이 몇 년의 공백을 지나 우리의 입에서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청춘을 함께 보낸 그 이름들은 반갑기도 흥미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로 하여금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 세월 참….’, 하며 마주 보며 웃었지만, 덧없기만 할 것 같은 세월 속에서도 U는 어느새 결혼을 앞둔,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가는 서른이 되어있었다. 아직 매일매일 방황하며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나는, 내 앞의 그가 신기하기도, 기특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축의금을 대신해서 내가 사겠다는 것을 한사코 반을 내겠다며 고집부리던 U는 기어코 내게 2,000원이 부족한 금액을 보내주었다. 그 순간, 나도, 그도, 크게 변한 것 없이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났다.
흘러가는 삶 속에서, 우연한 만남에서 이어진 맥주 한 잔 후에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삶의 가치를 느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