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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Oct 22. 2021

섬에는 섬의 시간이 흐른다

굴업도 장할머니

굴업도 이튿날 아침, 개머리언덕에 설치한 텐트는 그대로 두고 식사를 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해변에서 가장 가까이에 장할머니 민박이라는 곳이 위치해 있었는데 지나가며 식사가 되는지 여쭸다. 할머니는 아침에 단체손님이 있어서 밥이 다 떨어졌다고 하시며 산에 다녀오면 먹을 수 있게 해놓겠다고 하셨다.

 

마을을 지나 선착장쪽 해변을 가로질러 연평산으로 향했다. 고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예상보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다 슬슬 배가 고파진 나는 다시 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평상에 앉아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예전에 할머니 댁에서 봤을 것만 같은 꽃무늬 쟁반에 정성껏 차린 음식이 가지런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비롯해 생전 처음 먹어보는 가시리 라는 반찬도 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혹시 내일 아침도 예약이 될지 여쭤봤다. 할머니는 몇 팀이나 예약되어 있는지 헤아리시는 듯하더니 곧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셨다.

 

계산을 하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지갑을 텐트에 두고 온 듯했다. 계좌이체를 해드려도 되냐고 여쭈니 내일 올 때 달라고 하셨다. 나는 왠지 내일 꼭 다시 올 거라는 인상을 심어드리고 싶어 내일은 몇 시쯤 오면 될지 여쭤봤다. 할머니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며 오고 싶을 때 오라고 하셨다.

 

시간에 목매여 끌려다니는 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했던 나는,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 섬 사람의 느슨함이 낯설고도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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