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백패킹
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전날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고 무턱대고 출발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더운 것보다는 낫다며 차라리 잘됐다 싶었지만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에 그냥 내려갈까 고민되기도 했다. 이미 절반 넘게 와버린 시점이었고 모처럼의 주말을 허무하게 흘려보낼 순 없었기에 그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날 누가 산에 올까 싶었지만 빗줄기를 뚫고 정상에 올랐을 땐 어르신 한 분이 자리를 잡고 계셨다. 어르신은 빗줄기 속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계셨고 나는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반대편에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정신없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혼자 왔나 봐?”
어르신이 다가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젊은 사람이 왜 혼자 다녀?”
“혼자가 좋아서요.”
어르신은 자신도 혼자 다니는 게 좋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 배낭이며 텐트에 관해 훈수를 좀 두다가 본인이 무릎 수술을 받은 일,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가볍게 짊어지고 다닌다는 이야기 같은 것을 하다가 본인 자리로 돌아가셨다. 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쳤다. 나는 고요한 산 속의 정취를 만끽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때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임마, 산이지. 어~ 혼자야.”
친구분과 통화를 하시는 듯 한껏 높은 목소리였다. 통화는 한참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산 정상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맥주를 한 캔 다 비우고 또 한 캔을 따려고 하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산이야. 혼자. 어, 강원도.”
비슷한 내용의 통화는 상대를 바꿔가며 몇 번이나 반복됐다.
자려고 누웠을 때 텐트 밖 어르신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자냐고 묻는 어르신의 말에 아직 안 잔다고 대답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아무런 기척도 하지 않고 잠든척 했다.
혼자 있고 싶다면서 끊임없이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은 뭘까.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을 생각한다 뭐 그런 걸까.
아니면 눈에 띄게 혼자이고 싶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땐 어르신은 이미 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