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시작했다
직장인 3대 허언이라는 게 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지만 ‘퇴사할 거다’, ‘유튜브할 거다’, ‘제주도 살거다’ 정도가 3대 허언이라고 한다. ‘제주도 살거다’ 자리를 ‘이모티콘 만들거다’, ‘창업할 거다’ 가 대체하기도 한다.
유튜브를 시작했다. 채널명은 저속주행TV. 백패킹을 하며 찍은 영상을 올리는 채널인데 재미도 없는 것이 정보성 컨텐츠도 아니고 여간 정체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다. 채널명을 따라가는 건지 조회수도 구독자수도 더디게 늘어난다. 사실 정체구간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대단한 방향성이나 몇만 구독자를 달성해서 회사를 때려치우겠다 같은 당찬 포부같은 것은 없고 그저 영상일기처럼 기록이나 남겨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이동하면서 촬영을 해야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는 좀 무리가 있겠다 싶어 액션캠을 하나 구입했다. 유튜브 채널을 처음 방문했을 때 상단에 뜨는 소개 배너를 ppt로 만들었다. 이 정도가 내가 한 노력의 전부였다.
카메라를 보고 혼자 주절주절 떠드는 게 좀 어색했는데 하면할수록 좀 나아졌다. 그렇게 촬영한 영상은 컷편집과 자막 얹히기 정도의 간단한 작업만 해서 업로드했다. 10분짜리 짧은 영상 하나, 그것도 남들이 봤을 때는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지는 영상이겠지만 나같은 초보는 일고 여덟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렇게 만든 영상의 조회수는 많아야 삼백회 정도였다.
찍으러 가는 게 아니고 간 김에 찍는 거다, 이 마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촬영이 여정의 흥을 깨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지만 인간은 원래 간사한 법이다.
한 번은 산에서 멧돼지 떼를 만난 적이 있는데 멧돼지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카메라를 빨리 켜야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산비탈을 달려내려가는 멧돼지떼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왜 카메라를 켜놓고 다니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나를 보며 유튜브가 병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에서 멧돼지 만난 썰, 멧돼지 떼의 습격 같은 자극적인 썸네일 제목을 달아 조회수와 구독자를 한번 늘려보자는 심산이었겠지.
일을 떠나 쉬러 간 곳에서 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또 다른 일이 되게 해서는 곤란하다. 요즘 내가 조심하려고 하는 부분이다.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여정의 흥을 깨버릴 때가 가끔 생기고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가끔은 저속주행 이라는 채널 소개글처럼 조회수도 구독자수 증가도 저속주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정체된 듯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는 있다. 제자리에 앉아 말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