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화강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Nov 08. 2022

구어스키 단상 2

우리가 눈을 통해 인식하는 현실 세계는 과연 세계의 진정한 모습과 동일한 것일까? 





르네상스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로 시각적인 인식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인간이 신의 피조물로서, 신의 시선에 놓여 있는 대상으로서 개체가 아닌, 스스로 바라보고 인식하는 인식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주변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실존(실체)이 되기 시작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현재의 관객이 갖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사실 특별할 것이 없죠, 그냥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그 멀리 파리까지 가서 많은 시간 줄을 서서 보는 것이지, 실제로 보고 오신 분들의 반응은 대부분 그냥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명화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분들도 많죠.


하지만 이 작품 이전의 초상화와 이 작품 이후의 초상화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엄청난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모나리자의 웃음이라는 그 묘한 표정이 대표적이겠지요. 이전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얼굴들은 대부분 신이 바라보는 대상의 하나로 인간이 묘사되다 보니, 평면적이고 무표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드디어 <모나리자>에 와서 그림 속의 주인공은 그리는 화가(인간)를 바라보며 애정 어린 미소를 띠기 시작하는 것이죠. 


당시로서는 엄청난 이런 표현 방식의 발견은 라파엘로 등 레오나르도 이후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원근법 역시 중요한 발견입니다.(사실 르네상스에 시작했다기보다는 대상을 표현하는 시각적 인식 방식의 주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죠)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상황에서 대상을 묘사한다면 대지 위에 평면적으로 위치한 모습들이 주된 인식의 결과가 될 테지만, 인간이, 즉 우리 개개인이 서로 상대나 자연 또는 물체를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입체적인 모습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게 될 테니까요


이런 사고와 인식의 변화에 맞게 원근법이 주요한 기법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근대에 오면서 화가들은 또 다른 고민을 시작합니다. 과연 사물의 실체가 우리 눈에 보이는 상과 동일한 것일까? 우리는 실재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이런 고민들은 하나가 아닌 다수의 소실점을 등장시키고 큐비즘이 등장하게 되죠.


"They wanted to show things as they really are – not just to show what they look like."

(그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단지 보이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 홈페이지에 나오는 큐비즘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실 소실점에 대한 논쟁은 그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여기서는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글의 첫머리에 던진 구어스키에 관한 두 번째 질문


"우리가 눈을 통해 인식하는 현실 세계는 과연 세계의 진정한 모습과 동일한 것일까?"


를 생각하면서 이제 구어스키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Bahrain>


바레인에 있는 F1 트랙을 상공에서 찍은 이 사진을 3등분 해서 상단, 중간, 하단을 나누어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로 다른 시선(소실점)에서 촬영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가장 윗부분은 멀리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수평적인 시선에서 촬영이 되었고 하단으로 갈수록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대상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사실 사진이라는 장르는 회화와 달리 렌즈를 통해 표현된 이미지를 아무런 조작 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큰 편이었는데, 구어스키는 그런 관습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마치 피카소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본질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처럼 구어스키도 렌즈를 통해서 보이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대상물이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드러내려고 시도한 것이죠.


이런 독특한 테크닉은 영화나 방송 등에도 영향을 미쳐서 넷플릭스 독일에서 제작한 <다크>라는 시리즈의 첫 도입부가 이런 시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하늘에서 태양의 위치를 수평적으로 바라보다가 점차 고공으로 시선을 바꿔서 화면 안에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의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Natrang - 안드레아스 구어스키>


작업자들의 일상을 그려낸 위의 작품에서도 이런 복수의 소실점이 동시에 적용된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구어스키의 작품에서 어떤 질문들이 떠오르시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구어스키 - 단상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