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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Nov 07. 2022

구어스키 - 단상들 1

지난여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린 구어스키전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작가이기에 이렇게 많은 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정말 좋았는데요,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늘 새로운 사고(考)와 의문들이 떠오릅니다. 


이번 편부터 차례로 제 글을 읽는 분들께 그 단상과 질문들을 하나씩 던져보려고 합니다.


1. 세계


구어스키의 사진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세계(世界) 또는 계(界)입니다.





세계에서 계라는 한자어는 밭(田: 밭 전)과 밭 사이를 가르는 담 (介: 낄 개 : 밭과 밭 사이에 끼어있는 모양)을 뜻한다고 하는 데, 과연 이 '세계'란 단어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영어로 world의 어원을 살펴보면


  ""life on earth, this world (as opposed to the afterlife)," sense extended to "the known world," then to "the physical world in the broadest sense, the universe" (c. 1200)"

>> 지상 생활, 이 세계(내세와 반대)", 점차  "알려진 세계"로 의미가 확장된다 그리고 "가장 넓은 의미의 물리적 세계인 우주"로 귀결된다(c. 1200)




비트겐슈타인과 쇼펜하우어는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 (World, Welt)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저에겐 비트겐슈타인의 표현들이 구어스키의 사진들을 연상시키곤 합니다





<논리 철학 논고> - 비트겐슈타인


1.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1.1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

1.11 세계는 사실들에 의하여, 그리고 그것들이 모든 사실들이라는 점에 의하여 확정된다


1.2 세계는 사실들로 나뉜다

( 만약 우리가 그 각각의 사실들을 볼 수 있다면 사실의 총체인 세계의 실체도 볼 수 있다는 것일까? 또는 시각의 인지 범위를 넘어선 저 너머의 세상에 존재하는 사실들도 우리에게 가시적인 현상이 될 수 있는 것일까?)


5.6 나의 언어의 한계들은 나의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

(언어의 한계가 결국 우리의 인식 능력을 제한하고 그렇게 제한된 인식 범위가 내게 있어서 제한된 세계만을 허용하는 것일까? 만약 언어의 한계를 예술(시각 예술 또는 음악)을 통해 뛰어넘는다면 (인식의 한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면)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


6.45 세계를 영원의 관점에서 직관하는 것은 세계를 전체 –한계 지어진 전체- 로서 직관하는 것이다. 한계 지어진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느낌은 신비스러운 느낌이다.




비트겐슈타인의 글에서 저에게 그 의미가 가장 명확하게 들어오는 구절은 마지막의 6.45 였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그토록 명확해진 것은 바로 구어스키의 사진들을 통해서 인 것 같습니다


<논리 - 철학 논고>을 옮긴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통상의 고찰 방식이 대상들을 말하자면 그것들의 ‘한가운데에서’ 보는 것인데 반해, 세계를 영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바깥에서’, 대상들이 전체 세계를 배경으로 가지도록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구어스키의 작품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아주 높은 시점 (또는 원거리)에서 내려다보는 사진들을 통해 Macro. 즉 전체, 다시 말해서 대상을 단순한 객체가 아닌 그 실체가 완전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대상 자체를 포함하고 있는 전체 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비트겐슈타인식의 사고를 잘 드러내는 예로 다음의 두 사진 작품을 들고 싶은 데요,


< chicago board of trade >


구어스키 전시회 포스터에 등장했던 이 사진에서 구어스키는 자신이 포착하고자 하는 추상적인 개념인 '주식 트레이드'를 주식 매매가 이루어지는 증권거래소의 전체 모습을 통해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에 의하면 대상(증권거래라는 행위)이 속해 있는 전체계(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즉 영원의 관점에서 직관하는)



<Frankfurt Airport>


이 작품에서도 구어스키는 '공항'이라는 대상이 담고 있는 전체를 드러내고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사진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왼쪽 최상단은 공항 전체 스케줄 중에 가장 이른 타임테이블을 담고 있고 우측 하단에는 가장 늦은 타임테이블을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당연히 여러 컷의 사진을 찍어서 합성한 것입니다) 공항이란 세계의 실체를 관찰자로 하여금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구어스키에 관한 단상 첫번째 <세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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