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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사람 윤 Jul 24. 2023

의도치 않은 디지털 디톡스 데이

멍청비용으로 150만 원을 쓰다

일요일 내내 비가 내렸다. 잠깐 비가 그친 틈을 타 재빠르게 산책을 하겠다며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꽤나 넓어서 한 바퀴를 돌면 보통 걸음으로 30-40분 정도 걸린다. 언제 비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우산은 없이 문 밖을 나섰다. 처음엔 비가 오지 않더니 부슬비가 살살 내리더니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대로 비 맞은 생쥐 꼴을 하고 라면 하나 사들고 집으로 왔다. 


신나게 라면을 끓여볼까! 보글보글 빗소리와 함께 라면 끓이는 소리는 아름다웠다. 라면을 한입 후후 불어 먹으려던 찰나, 휴대폰이 이상하다. 갑자기 재부팅이 된다. 다시 켜지겠지 싶었는데, 무한 사과모드로 대기 중이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뭔가 잘못 됐다!'


인터넷 검색모드에 돌입했다. 아이튠즈로 연결하여 복구모드로 업데이트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글이다. 희망이 보인다. 바로 휴대폰을 연결하고 확인해 봤다. 업데이트가 완료되는 듯하더니 '4013' 오류가 떴다. 찾아보니 하드웨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란다. 3시간 정도 시도하다가 피곤해져서 아이패드에 알람을 걸고 잠이 들었다. 


무언가 낯선 느낌의 월요일이다. 습관처럼 자꾸만 휴대폰을 손에 잡고 전원을 켠다. 습관이 참 무섭다. 출근길에는 애꿎은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가 뺀다. '아.. 음악을 못 듣는구나 오늘은' 그러면 오늘은 출근길 독서 시간이다! 손에는 책 한 권, 휴대폰은 가방에 넣어둔 채로 지하철을 탔다. 평소와는 다르다. 평온한 느낌이 든다. 


출근해서는 혹시 나의 부재를 걱정하지 않을까, 가족에게 PC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업무를 신나게 하려는데, 일부 기능에 접근이 어렵다. 휴대폰 이중인증을 해야 하는데, 휴대폰이 없는 것이다. 휴대폰이 내 삶에 참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구나라고 다시 한번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무서웠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정말 다 잃어버리는 것이겠구나.


오늘의 업무는 오히려 집중이 잘 되었다. 되지 않는 일은 포기하고 되는 일에만 집중했다. 전화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화가 오지 않는 하루가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나 이런 거 좋아하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수리센터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일정 탓에 저녁 7시에 방문했다. 의도치 않게 24시간 동안 휴대폰 없이 살기를 실행한 것이다. 담당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4013'오류는 데이터를 초기화하는 것을 진행해야 하며, 100% 복구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대로 사진과 모든 정보를 잃어버리기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라서 그런 것인가. 일단 

휴대폰은 집으로 가져가고 사설센터를 한번 더 가보기로 했다. 전원이 켜지지 않으니 보상판매도 불가한 내 불쌍한 휴대폰. 그러나 당장 내일부터 업무 할 때라도 휴대폰은 필요하니, 새 휴대폰을 구매하기로 했다.


"무이자 할부 언제까지 될까요? 3개월 할부로 해주세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애플 직원은 구매해 줘서 고맙고 새 휴대폰과 행복하라고 말했다. 


"네..."



새로운 휴대폰이 생긴 즐거움보다 백업을 해두지 않은 나의 과거를 자책해 보며 이번에는 꼭 백업을 해 두겠다고 다짐했다. 사과모양의 로고가 붙은 쇼핑백을 덜렁덜렁 들고 집으로 왔다.


유심칩을 넣고 자주 사용하는 앱부터 설치했다. 메신저, 은행 그리고 업무용 애플리케이션까지. 많은 인증과 문자가 오고 가다 보니 기본적인 설정은 끝났다. 이제 좀 마음의 평화가 오네! 


텅 빈 전화번호부와 사진첩을 바라본다. 이 공간도 곧 차오르겠지.. 백업을 잘하자, 다시 이런 기분 느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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