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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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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숲 Mar 10. 2024

하얀 물

따다다다다 따다다다다

딱 따르르르다다다닥 딱딱 따르르르

따다다다다다다닥 따다다다다다


“딱따구리다!”


저 아래 지나가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다다를 비롯한 모든 딱따구리 친구들이 일제히 고개질을 멈췄다.


“어딨어? 보여?”

“가만있어봐. 저쪽인데. 왜 이제 안 하지? 딱따구리야~ 딱딱해봐~”


딱따구리 친구들은 눈짓을 교환하며 픽 웃는다. 하지만 다다는 마음이 급하다.

‘아, 가던 길 가시죠. 빨리 일끝내고 람지네 가야 하는데.’


“저기있다!”

남자가 딱띠를 발견했다. 어휴, 하필 제일 겁 많은 놈을.


“야, 빨리 카메라 꺼내!”

남자가 등로를 벗어나 낙엽 쌓인 길로 바스락 가까이 다가온다. 파닷! 겁에 질린 딱띠가 재빠르게 날아올랐다.


에라, 다다는 남자가 뭘 하든 말든 다시 고개를 냅다 들이받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닥 따닥 딱 딱 다다다 따다다다다”


“우악, 저기야!”

흥분한 남자가 다다 쪽으로 다가왔다. 그 기세에 흠칫 놀랐지만 고개질을 이어갔다.


“따다다다다”


찰칵찰칵, 부시럭, 찰칵, “이야, 쟤 진짜 열심이네~” 찰칵, 남자가 가길 기다리던 다른 딱따구리 친구들도 별일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하던 일에 착수했다. 


따다다다다 따다다다다

딱 따르르르다다다닥 딱딱 따르르르

따다다다다다다닥 따다다다다다





사진 몇 장을 찍은 남자는 금세 흥미를 잃었는지 떠났다. 금방 갈 거면서 귀찮게. 다다는 진도가 제일 빠르다. 사방으로 나무조각 파편이 떨어졌다.


딱 - 딱 - 딱 - 따다다다다닥 - 딱 - 딱 - 따다다다다닥 - 딱 - 딱 - 따다다다다닥 ...
 

그러다 고개질에 맞춰 노래도 만들어 부른다.


남 - 자 - 야 - 빨리가다다가 - 던 - 길 - 마저가다다다 - 음 - 에 - 또보자다다잉

거 - 의 - 다 -했어다다다이 - 제 - 다 - 끝나가다다람 - 지 - 너 - 딱기다려다다


“와, 다했다! 람지야~~~~”


다다는 날아올랐다. 람지네는 저 언덕 뒤쪽이다. 사람들 발길이 좀 드문 덴데 이 동네가 뭐 그래 봤자이긴 하다.


후드득.


“람지야, 나 왔어!”


***


“어, 다다 왔어?”


다다를 맞이한 건 람지가 아니라 뽀구리였다.


“뽀구리… 와있었네?”

“왜애? 나 있어서 실망이야?”

“무슨 소리야. 네가 있을 줄 몰랐어.”

“왜애? 내가 있으면 안 돼?”


하… 뽀구리 서운해하기 또 시작이다. 뽀구리가 서운한 이유는 여기저기 1천 가지도 넘는다.


“야! 뽀구라! 근데 안경 새로 했네?”

뽀구리 표정이 밝아진다.

“응, 예뻐?”

“응! 흔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그런데 되게 잘 어울려!”

“하하하. 이거 요새 인기 많아서 못 구하는 디자인이야.

뽀구리가 으쓱댄다. 제 눈 만한 안경을 끼고 있으니 안 그래도 튀어나올 것 같이 큰 눈이 더 커 보인다.


삐걱.


“다들 와있네!”

두털이를 마중 나갔던 람지가 돌아왔다. 이마에 헤드랜턴을 두른 두털이가 따라 들어왔다.


“얘는 두털이야. 맛있는 막걸리를 제일 많이 알아!”


두털이라고? 두털이가 오는 줄 몰랐잖아! 다다는 와락 달려들어 두털이에게 인사했다.

“와, 네가 두털이구나! 얘기 많이 들었어.”

다다가 오른손...이 아니고 오른날개를 내밀었다.


“아… 잠깐만…”

두털이가 한 걸음 물러나며 손바닥을 펴 보여줬다.

“손 좀 씻고 올게. 흙먼지가 많이 묻어서.”

다다는 순간 머쓱했지만 두털이가 지어 보이는 맑은 웃음에 금세 괜찮아졌다.


***


이날 저녁은 람지가 마련한 자리다. 람지가 맛있는 막걸리가 있다며 친구들을 모았다. 모두 막걸리를 각별히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람지는 지난 가을 밤톨을 주으러 마을 어귀까지 나갔다가 사람들이 흘려 흥건하게 고인 막걸리를 처음 맛보았다. 달착지근한 맛이 꼭 밤톨 같으면서도 새큼한 향이 사과 같기도 하고 귤 같기도 했다. 호두알처럼 고소하고 기름진 느낌도 났다.


"이 하얀 물은 정체가 뭐지?"

다시 맛보고 싶었다. 입안에 가득 넣은 밤톨 하나 속을 파서 막걸리를 담아왔다. 오는 길에 만난 뽀구리에게 맛 보여줬더니 뽀구리는 단박에 막걸리 팬이 됐다.


“이게 뭐야? 맛도 좋은데 기분도 좋아.”

뽀구리의 큰 눈이 물에 젖어오르고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다다가 하얀 물의 정체를 알려줬다.

“그건 막걸리라는 거야. 사람들이 꼭 한 통씩 배낭에 꽂아서 산에 오더라고. 여기까지 오느라 사색이 돼서 지친 사람들이 빙싯 웃으며 그걸 꺼내서 마시는데, 그러면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고 막 살판이 나.”


숲에선 막걸리가 금방 유명해졌다. 사람들이 마시는 하얀 물. 달고 고소하고 새큼한 게, 한 방에 밥이랑 반찬이랑 과일을 다 맛 보여주는 물이라고 했다. 온갖 맛이 다 들었는데 빛깔만큼은 아무것도 안 들은 것처럼 하얗고 뽀얬다. 하얗고 뽀얀 건 이유가 있다고 했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근심걱정이 낱낱이 사라져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게되어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어른만 마시는 물이란다. 아이들은 이미 아이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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