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 1차 실패 이후 약 두 주 동안의 방학을 보내고 오늘부터 호르몬 약을 먹기 시작한다. 방학 동안 술도 좀 마시고 커피도 홀짝였다. 하지만 전처럼 맛있지가 않다. 매일 아침 정성을 다해 치루던 의식 - 커피 한잔과 거의 매일 밤 하루를 마치는 휴식 - 막걸리 한잔은 아마도 앞으로 수 년 동안 중지한다. 다행히 아쉽거나 그립지 않다. 한편 기대도 된다. 몸에 해롭다는 주장이 분분한 커피와 술이 빠진 내 삶에 찾아올 더 나은 무언가가. 일테면 총명함이라든가, 끔찍하게 흐릿해져버린 기억력이 개선된다든가. 아니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라도..? 하지만 아직 딱히 이렇다할 변화는 느끼진 못했다. 오히려 지난주 초까지는 전에 없던 두통이 지끈지끈했다. 나는 그걸 커피 금단이라고 정리했다. 최근들어 더 심해진 듯한 얼빠짐 증세도 알코올 금단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까. 지독한 건망증 증세로 최근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심각한 일을 겪었었는데, 지금 여기다 받아쓰려니 기억이 안 난다.
방학을 맞아 서둘러 공단건강검진을 받았다. 엑스레이 같은 것 당분간 못할테니까. 눈썹 문신도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아이 낳고 정신 없을텐데 눈썹 그릴 짬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짝짝이에 높이도 다르고 진한 곳은 진하고 흐린 곳은 아예 아무것도 없는 내 눈썹을 나만큼 잘 그려낼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의심하고 있다. 흰 머리는 올 초부터 염색 없이 방치하고 있다.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 말고는 대인 기피 증세나 염색 좀 하라는 사회의 질타 없이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다.
묵직하게 부풀었던 몸은 천천히 풀려 오늘은 간만에 날아갈 듯 가벼웠다. 하지만 처방받은 저 호르몬약은 다시 나를 조종하겠지. 넘치는 식욕과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약간의 우울이 곧 찾아올 수순이다. 작은 일이다. 아주 작은 일. 난자 체취 시술 과정에서 삐끗한 왼쪽 고관절은 아직 회복이 안 되었다. 실은 좀더 심해진 것 같다. 신경써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그게 더 자극을 주고있는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운동이 별로 없다는 게 좀 힘들다. 특히 코어에 힘 들어가는 일이나 운동을 피해야 한다는 게. 가뜩이나 흐리멍텅한 코어가 이대로 방치되는 건가. 요가와 걷기를 체계적으로 할 방안을 세우고 있다.
동료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하고 불성실하게 보냈던 시험관 1차 시술 시기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부지런을 떨려 애썼다. 그 사이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고 다시 힘을 내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어쩌면 지금 내 관심은 시험관 시술보다 일에 더 가있다. 오히려 나은 일인지 모른다. 원지를 기다리는 일은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과 배치되는 게 아니니까. 병원이 잘 이끌어줄 것이고 나는 믿음을 갖고 성실하게 따르면 될 일이다.
2024년이 반 지났다. 6월 마지막 날이다. 이런 날에 의미 두는 걸 좋아한다. 2024년 하반기는 아마도 다시 없을 멋진 날들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