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석원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5년 정도 불면증을 앓았던 경험이 있다. 나의 그 몽롱한 시간을 함께해 주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다. 일로서, 사랑으로서, 수많은 생각들로 복잡할 때면 상비약처럼 찾아보던 바로 그런 이야기.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가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가수이기에 궁금증이 나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고 싶다가도 꾹 참고 검색하지 않은지 어언 몇 년째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이 책 속 그의 진한 얼굴,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함을 담은 목소리를 영영 상상하고 싶었다. 내게 위로가 되고, 웃음을 만들어주었던 그를 그대로 두고 싶었다.
언젠가, 마음이 차갑다 싶을때 책장에서 꺼내 언제든 다시 읽을 책을 찾고 있다면 바로 이 책-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우산을 쓰고도 몸이 반쯤 젖어
짜증 섞인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르는데
이제 막 내려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와하하
비를 맞으며 즐거워한다
그래
즐거운 사람들은 뭘 해도 즐거운 법이지
사실은 비가 성가셨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흐린 탓은 아니었을까
웃을 일이 많아서 웃는 게 아니라
웃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웃게 되는 것처럼
가치란 건 원래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는 얘기다
이 넓은 세상에 너와 나, 둘만의 이야기에서는 더더욱
원래부터 소중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주고
다른 사람은 해주지 못하는 이해를 해줌으로써
오직 내게만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가치란,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그들은 지겹고도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불같이 싸우다가도 결국엔 늘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확인했다. 자신을 따라주지 않는 아내에게 골이 나 노래를 거부하던 늙은 할아버지는 남편 톨스토이의 사랑을 확신하는 아내의 조련질 앞에 대문호의 체면이고 나발이고 집어던진 채 결국 하지 않겠다던 노래를 부르며 그녀 앞에 엎드려 아이처럼 사랑을 고백한다. 늙어 얼굴에 주름이 한없이 그어진 아내는 그제야 만족해하며 여전히 남편에게 나를 언제까지나 떠나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 그런 아내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남편. 사랑은 이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 또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난 니가 좋은 게 좋아."
"어쩌죠. 저도 당신이 좋은 게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