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고 확인했다. 내가 아는 롯데 콘서트홀이 맞나, 잠실 말고 또 다른 곳에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롯데 콘서트홀에서는 클래식과 국악공연 만을 관람했던 적이 있던 나로선 진정 밴드 음악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예술의 상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장르에 따른 적합한 공연장이 있기 때문이다.
롯데 콘서트홀은 지금까지 경험한 공연장의 음향 중 단연 최고라고 느꼈던 공연장이기에 2021. 10. 17. SOMEDAY THEATRE CANTABILE <2악장>의 공연에 흥미가 끌어올렸다. 우선 마이크나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는 비확성 공연에 적합하기에 마이킹을 하는 밴드 공연의 음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 반, 기대 반. 음향도 음향이지만 조명도 클래식에 맞춰져 있기에 화려하지도 않을 것인데 어떻게 시각적 충족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가지고 들어섰다.
INTRO, 공연의 첫인상
공연의 인트로는 피아노 반주의 바이올린 독주 3곡이었다. 클래식 전문 공연장에서 오직 자신의 연주로만 홀로 채울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기에 바이올리니스트가 감개무량하지 않았을까 싶다. 연주되었던 3곡 모두 관람객들이 잘 아는 곡들로 구성했다. 그중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 연주를 무척 즐겁게 들었다. 원곡이 유명하고 나에게는 오케스트라 편성의 주선율을 피아노가 끌고 가는 것이 각인되어 있던지라 바이올린으로의 편곡이 흥미로웠다. 본래 원곡이 스트링이 크게 좌우하는 곡이 아니었고 왈츠 테마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편곡된 음악은 이러한 곡의 특징을 확 지워주었다. 클래식 독주도, 재즈도 아닌 그저 신예찬이란 음악과 연주였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인생의 회전목마’를 커버 연주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 만의 해석이 분명하게 되어 있고 개성이 담뿍 담긴 편곡과 연주였다.
관객에게 보내는 첫인사
이윽고 밴드 4명이 등장하고 처음 연주된 곡은 짧은 소품곡이었다. 마치 바다를 건너 막 육지로 도착한 위풍당당한 선원들이 연주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롯데 콘서트홀에 왔다. 이제 이 공연장은 우리가 접수한다.’ 하는 선포와도 같은 연주였다. 드럼 사운드가 다잡고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 그 위에 각 악기들의 선율이 얹어졌는데 여기서도 바이올린은 무척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곡이라고 말하기에도 짧은, 약 1분 정도 남짓되는 연주였지만 LUCY라는 밴드의 포부와 자신감 한편으로는 본 공연의 기대감과 긴장감, 관객을 만나는 반가움 등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 짧은 1분이 뇌리 속에 박혀버렸다.
마치 공연장에 맞춘듯한 음악
이후 차례로 들려준 음악들은 초반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물소리가 나기도 하고, 마치 원시부족이 살고 있는 정글과 같은 소리도 나오고 무엇보다 출퇴근길에 들어왔던 너무 익숙해서 혼동까지 주는 공간의 소리가 음향 좋은 공연장을 통해 울리니 한층 그 힘을 발휘하였다. 앰비언스를 활용하여 어떻게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경청해야 하는지 제시를 해준 후 밴드의 악기가 합주되니 몰입도와 이해도가 확실히 좋아 음악 듣는 것을 즐겁게 해 주었다. 공연 후반부쯤 다시 들렸던 모닥불 앰비언스는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의 두 손이 불을 쬐는 듯한 행동을 하게 뜸하기도 하였다. 관객이 이 정도로 음악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한다면 감히 성공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밴드 LUCY의 무대는 공연장의 조건을 최대로 활용한 최고의 셋 리스트가 아니었나 한다. 무엇보다 기승전결이 잘되어있고 개연성이 짙었다. 공연장의 울림이 달랐을 것이라 연주하기가 까다로웠을 텐데 4명의 연주 합과 발란스가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밴드 편성에서 흔하지 않은 바이올린은 본 밴드의 색을 명료하고 유일무이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는 바이올리니스의 역량도 있겠지만 곡을 만들 때부터 바이올린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이고 똑똑하게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긴 말할 것 없이 음악이 세련되고 좋다.
강점이 많은 유일무이한 밴드
LUCY라는 밴드를 이야기하는데 바이올린만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했지만, 다른 멤버들 역시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쉽다. 드러머의 경우 공연 내내 인이어의 음향문제를 거론했는데, 이 말은 곧 MR과 클릭이 잘 안 들렸다는 소리일 것이다.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 다시 공연을 복기해보면 소름 끼치게도 분명 드러머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인이어는 안 들리고 드럼은 치고 그러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LUCY에서 드러머는 비트 이상의 것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선율 악기가 아님에도 드럼 연주만으로 곡의 색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매우 놀랐다.
밴드에서 베이스와 보컬의 역할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중요하다. 밴드의 매력에 입문 계기가 보통 보컬을 통해서라면 베이스는 들어선 문을 닫아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바이기에 밴드 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베이스란 악기 특성상 선율적으로 부각되는 악기가 아닌지라 튀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베이스가 빠진 음악을 들으면 그 무엇보다 음악의 빈틈이 공허하게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음악의 완성도나 공연의 생명력을 이야기할 때 베이스의 중요성을 더 강조해도 부족하다.
밴드 음악이 각 악기들의 합주로 완성되기는 하나 관객에 가장 먼저 보이고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보컬이다. 그런 면에서 LUCY의 보컬은 꽤 매력적이었다. 음색이 독특하고 다채로워서 밴드에 국한된 장르만이 아닌 여러 장르를 상상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보컬의 음색이 밴드 LUCY의 색을 다양하게 하는 듯하다.
클래식 전용 공연장에서의 밴드 공연 관람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는 LUCY라는 밴드의 역량이었을 것이다. 또 공연이 있으면 내 돈 내 관람 내 감상하겠는가 묻는다면, 당연 '그렇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음악축제며 공연이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개최되면서 공연예술에 목마름이 가득했다. 이번 공연으로 해소된 마음이다. 앞으로의 음악이 기대되고 공연이 기다려지는 밴드를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