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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빵작가 May 10. 2022

카눌레의 누명


운전을 하다 보면 자동차의 뒷모습에서도 표정이 보인다. 주로 자동차 후면의 굴곡과 브레이크 등 모양에 따라 인상이 결정되는데, 완만한 곡선에 동글동글한 브레이크 등은 정차를 할 때마다 나를 향해 웃는 것 같아 볼수록 정감이 간다. 반면 뾰족하게 각진 후면에 브레이크 등까지 오른쪽으로 치켜 올라간 차는 정차할 때마다 험상궂은 표정을 짓는 것 같아 밉상으로 보여 가끔 눈을 흘긴다. 종종 죄 없는 차에 누명을 씌워대더니 나는 이제 빵과 과자에도 까다롭다는 둥 마음대로 성격을 갖다 붙이고 있나 보다.


'드디어 카눌레를 만들어 보는군!'


선생님께 특별히 요청드려 학원 커리큘럼에 없는 카눌레를 시연하는 날이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재료가 들어가기에 그렇게 비싼지 동기들 모두 궁금해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의 레시피가 더 궁금해졌다.


"카눌레는 '동'으로 만들어진 전용 '동틀'로 구워야 하는데 교실에 몇 개 되지 않으니 여러분에게 몇 개만 시연으로 보여드릴게요. 그리고 이 제품은 이틀에 걸쳐 완성되니 오늘은 반죽을 만드는 것을 보여드리고, 내일 오븐에 구울 거예요."


살면서 '동파이프'는 들어봤어도 '동틀'은 처음 들어보았다. 게다가 그 조그만 틀 하나에 6천 원쯤 한단다. 다른 구움 틀 대비 두세배나 비싼 데다 만드는데도 이틀이나 걸리다니 과연 평범하지 않은 까다로운 녀석이다.


'카눌레'는 프랑스어로 ‘홈이 파여 있는 모양’이라는 뜻으로, 이 특징적인 모양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겉에서 보면 짙은 갈색빛에 반질반질 윤기나는 표면과 세로로 파인 홈이 마치 잘 접힌 주름치마를 입은 것처럼 우아해 보이기까지 하다. 식감은 동틀에 튀겨지듯 구워져 겉은 캐러멜같이 바삭하고 단단하지만 속은 쫄깃하고 촉촉해 겉과 속이 완벽히 다른 매력이 있다. 그 식감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지만 한 입 거리 밖에 안되는 작은 크기에 3천 원 정도 하니 먹을 때마다 망설여지는 디저트였다. 그래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는데, 선생님의 앞선 설명처럼 구움틀마저 까다로우니 저런 식감을 내려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질지 기대되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카눌레 시연이 시작되었다.


1. 우유, 설탕, 바닐라빈, 버터를 넣고 끓기 전 80도 정도까지 끓여준다.

2. 달걀과 설탕을 넣고 잘 저어준 후 체질한 박력분을 섞어준다.

3. 1과 2의 재료를 거품이 나지 않도록 섞은 후 체에 걸러주고, 럼을 섞어준다.

4. 냉장실에서 하루 숙성 후 동틀에 반죽을 80% 채워 오븐에서 40분 구워주면 완성!


‘엥? 이게 끝이라고?’


당연히 복잡한 재료와 까다로운 과정을 상상했는데 실제 만드는 과정은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반죽이 냉장고에서 숙성되어야 하는 휴지 시간이 하루 필요할 뿐 구하기 어려운 재료도, 만들기 까다로운 절차도 없었다.

선생님의 시연이 끝난 후 나는 선입견 때문에 오해했던 누군가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처럼 의외성에 놀라고, 그것의 반전 매력에 더 좋아져 버렸다. 


10여 년 전 다른 계열회사에서 전출되어 J가 우리 팀으로 왔을 때, 전입 온 첫날부터 팀장에게 하는 그녀의 행동들은 ‘상사에 대한 예우와 잘 보이려는 아첨’ 그 사이에서 애매했다. 팀원들은 팀장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그녀가 얄미웠고, 한동안 J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곧 우리는 바쁜 팀원의 점심을 챙겨 주는 사람도, 아픈 동료의 약을 사다 주는 이도 J였다는 걸 알았다. 그녀에 대한 진심을 알고 난 후 지금까지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로 지내고 있으니 하마터면 선입견때문에 좋은 친구를 놓칠 뻔했다.


겉과 다른 속에 한번 놀라고, 유난한 구움 틀과 달리 무난한 레시피로 반전 매력을 주었던 카눌레!

내 멋대로 까다롭고 유난하다 누명을 씌워대서 정말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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