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마카롱을 만들었다. 분명 마카롱을 만들었는데 망카롱(망친 마카롱), 뻥카롱(속이 빈 마카롱)이 번갈아가며 나오니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실패의 전리품인 못난이 코크(아래 용어설명 참조)가 냉동실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갈 때면 아까운 재료비 생각과 쪼그라드는 자신감으로 슬픈 엄마 속도 모르고 둘째 딸아이는 수북한 코크 봉지를 헐어 학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기다렸다는 듯 못난이 코크들을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때 나는 딸아이에게 두 가지 약속을 받아낸 후 허락했다.
첫째, 선생님께는 이후에 예쁘게 구워진 것들로 챙겨드릴 테니 못난이 코크들은 친구들과만 나눌 것.
둘째, 친구들에게 나눠줄 때 '원래 엄마는 이 보다 더 마카롱을 잘 만들지만 이번에 어쩌다 망친 것'이라고 꼭 설명을 해준 후 나눌 것.
그러나 늘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바로 다음 날 딸의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어머님! 어제 직접 구워 보내주신 마카롱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적힌 문자를 받고는 너무 창피해 답장도 못 드렸다. 아직 부족한 실력을 조금이라도 감추어 보려 했던 엄마의 얕은 술수는 결국 약속을 홀랑 다 잊어버린 딸아이로 인해 허사로 돌아갔고 그 덕에 한동안 매일같이 마카롱을 구웠다.
그 결과 매끈하게 잘 구워진 코크가 점점 늘었고 그것들은 크기별로 짝을 맞추어 넓은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조심스럽게 옮겨 담고 특별 관리를 했다. 간혹 코크가 생각처럼 잘 안 나와서 우울한 날에는 이 '밀폐용기'를 꺼내 '마음의 용기'를 얻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통장 속 잔고를 확인한 것처럼 든든해졌고, 성공사례를 눈으로 다시 보니 위로가 되는 효과도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심심할 때는 반려식물 보듯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하나하나 만져보고 제자리에 돌려놓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무탈하게 잘 들어있는 코크를 모조리 꺼내 식탁 위에 늘어놓고는 크기별로 다시 짝을 맞추면서 말 그대로 마카롱과 놀기도 했다. 이 정도면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이 아니라 반려 과자라 해도 무리가 없겠다. 코크는 밀봉하면 냉동실에서 2~3주 정도 보관이 가능하기에 예쁜 것들은 잘 두었다가 주변 지인들에게 기념일에 선물로 손색이 없어 유용성면에서도 좋은 과자이다.
그런데 마카롱을 자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다 보니 마카롱만큼 호불호가 극명한 과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매번 선물 받는 분의 마카롱 취향을 예상해 보고 직접 확인하는 재미까지 생겼다. 여러 반응을 유형별로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유형 1. 드물지만 과거에 마카롱의 당도에 심하게 데어 트라우마(?)가 생긴 분들이다. 마카롱을 건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심한 경우 마구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마치 못 먹을 것을 받아 든 사람들 같다. 그렇게 달디 단 것을 왜 먹냐는 표정이다. 공들여 준비한 나의 입장에서 간혹 마주하는 이런 반응에 서운할 법도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분들의 취향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놀랍게도 이 녀석을 직접 내 손으로 만들기 전까지 나 역시 그랬으니까.
유형 2. 아메리카노와 같은 달지 않은 음료에 곁들이기 좋다며 주로 커피와 함께 있을 때 마카롱을 즐기는 분들이다. 나의 부모님은 과거 직접 마카롱을 사서 드셔 본 적은 없었지만 내가 직접 만든 마카롱을 커피와 함께 내어드렸더니 아메리카노 커피와 함께 드시기 좋다며 그 이후 마카롱을 즐겨하신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즐기고 싶은 마카롱 취향이 바로 이 유형인데 '단짠단짠' 만큼이나 매력적인 조합인 마카롱의 단 맛을 아메리카노의 쌉쌀하고 개운한 맛이 보완해주는 '단쓴단쓴'의 조합으로 즐기는 것이다.
쌉쌀한 커피와 함께 달콤한 마카롱을 즐기고 싶지만 나는 불행히도 그럴 수 없다. 카페인에 민감하여 커피는 한 모금만 마셔도 여지없이 가슴이 벌렁거리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파오며, 배속은 가스로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한 모금쯤이야' 하며 함부로 옆사람 커피를 탐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변에는 생각보다 나처럼 커피를 못 마시는 이들이 꽤 많았는데 그중 한 명인 회사 후배 B는 카페에 가면 늘 뜨거운 캐모마일에 얼음을 5알 정도 넣어달라고 했다. 뜨거운 음료에 다시 얼음을 넣을 거면 애초에 아이스음료를 마시라고 동료들이 놀려대기도 했지만 항상 뜨거운 차를 시킨 뒤 얼음을 넣었던 그녀만의 차 취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자연스럽게 직장에 다닐 때 부러운 이들이 다름 아닌 출근길 모닝커피를 들고 오는 동료들이었다. 뜨거운 여름날 얼음이 그득한 아이스커피를 찰랑거리며 가는 이들을 보면 나보다 족히 1~2도는 더 시원해 보였고, 추운 겨울 언 손을 호호 불며 걸어오는 대신 고소한 향의 뜨거운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고 온 이들에게 저절로 시선이 가기도 했다. 술은 마실수록 주량이 늘었지만 커피만큼은 아무리 마셔보아도 늘지 않으니 앞으로도 마카롱과 아메리카노의 조합을 즐기지는 못할 것 같아 개인적으로 참 아쉽다.
유형 3. 마카롱에 필링을 채우지 않고 코크만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코크의 바삭하면서 쫀득한 식감 자체를 즐기는 유형이다. 가끔 딸아이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필링을 채우지 않은 코크만 줄 수 있는지 묻는데, 일부 친구들은 코크만 찾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먹으면 필링을 채운 것보다 코크에 들어가는 아몬드파우더의 고소함과 풍미를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마카롱을 선물할 때 일부는 필링을 채우지 않고 코크만을 포장해서 드리기도 한다. '어떤 취향이신지 몰라 다 준비해보았어요~'의 마음으로.
유형 4. '달다=맛있다'는 나의 남편 같은 유형이다. 디저트 종류에 까다롭지 않고 무난하게 뭐든 맛있게 드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다만 여러 가지 필링을 채운 마카롱을 가져다주고 시식 의견을 물으면 한결같이 '맛있다'로 일관하니 가끔은 정말 맛있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나의 마카롱 취향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전에는 전혀 즐기지 않았던 [유형 1]과 같았지만 마카롱을 직접 만들게 되면서 코크의 식감과 여러 가지 필링에 따라 맛의 변주가 다양한 마카롱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내가 애정을 갖고 직접 만들어보니 그것의 특성을 알게 되고 전에 보지 못했던 매력들이 하나둘 보인다. 생전 마카롱을 드시지 않았던 부모님이 커피와 함께 드시게 된 건 아마도 나이 먹은 딸이 새로 도전하고 만들어 드리는 것이 안쓰럽고 기특해서 즐겨주시는 것이리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하던 시구절처럼 애정을 가지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취향이 변하기도 한다. 어디 마카롱뿐일까. 무엇이든 고정 불변한 것은 없으며, 언제든 우리의 취향은 변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의 마카롱 취향은?'
참고로 마카롱과 관련한 용어 및 기본 내용에 대해서 알아두면, 앞으로 제품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울 테니 상식적인 측면에서 적어둔다.
마카롱 관련 용어 중 '코크(coque)'는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 가운데 크림('필링'이라고 부른다)을 감싸고 있는 양쪽 겉 부분을 일컫는다. 주로 마카롱의 식감을 담당하는데 코크를 만드는 4가지 재료(달걀흰자, 설탕, 아몬드파우더, 슈가파우더) 비율과 머랭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식감이나 당도가 많이 달라진다. 마카롱이 '망카롱' 혹은 '뻥카롱' 이 되는 것은 대부분 이 '코크'를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 결과물의 완성도가 떨어졌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잘 만들어진 코크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코크의 표면이 매끈해야 한다.
둘째, 단면을 잘라보았을 때 코크 속이 꽉 차 있어야 한다. 이때 속이 비어 있으면 '뻥카롱'이 된다.
셋째, 코크 중 주름이 잡힌 것처럼 보이는 부분인 '피에(pied)'의 모양이 안정적으로 생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