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을 남기는 여행의 방식

일본 돗토리 2박 3일

by 여울

2박 3일의 일본 여행은
시간으로 보면 짧았지만
몸과 마음에 남긴 여운은 길었다.

미팅은 11시였지만
여행의 시작은 늘 그렇듯 조금 이르게 움직였다.
비행시간은 한 시간 남짓.
요나고 국제공항은 작고 소박한 시골 공항이었다.
복잡하지 않은 동선, 낮은 건물들.
이곳에서는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도착과 동시에 여행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이번 여행에는 조세호 가이드가 함께했다.
31명의 여행객들보다 더 커 보이는 캐리어에는
온갖 약품과 자료, 여행지마다 꺼내는 정보지와
오랜 시간 쌓인 경험담이 빼곡했다.
날마다 달라지는 패션과 쉼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덕분에
이 여행이 ‘잘 준비된 시간’이라는 신뢰가 생겼다.

첫 방문지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대표작
『게게게노 키타로』에 등장하는 요괴들이
거리 곳곳에 브론즈상으로 서 있는 곳이다.
무려 153개의 요괴 동상.
무섭기보다는 익살스럽고,
기묘하기보다는 친근했다.
이 도시는 다름을 배제하기보다
이야기로 남겨두는 태도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이후 도착한 미사사 온천.
850년의 역사를 가진 온천으로,
“사흘만 머물면 굽은 허리로 들어와도
반듯하게 걸어나간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오래된 시간은 대체로 서두르지 않는다.
이곳의 공기 역시 몸을 풀어주는 쪽에 가까웠다.

첫날 숙소는
미사사 온천 사이키 벳칸 료칸.
1870년에 문을 연,
미사사 온천가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이다.
1층의 일본식 정원은 걷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았고,
다다미방은 정갈하고 단정했다.
불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이
이런 감각일지도 모른다.

2일차에는 돗토리 모래 미술관을 찾았다.
‘모래’라는 단 하나의 재료로 완성된
실내 조각 미술관.
높고 넓은 공간 안에
놀라울 만큼 정교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모래 조각가들이
매년 하나의 테마로 작품을 선보이고,
1~3월에는 기존 작품을 모두 허물고
다시 새로 만든다고 한다.
사라짐을 전제로 존재하는 예술이라는 점이
오히려 더 깊게 남았다.

이어서 방문한 돗토리 사구.
산인해안 지오파크에 속한 이곳은
남북 2.4km, 동서 16km에 이르는
일본 최대급 해안 사구다.
바다와 모래가 만들어낸 풍문(風紋),
우마노세라 불리는 언덕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가 바다로 흘러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게 된다.

쿠라요시에서는
시라카베 도조군 거리와 아카와가와 주변을 걸었다.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에 걸쳐 지어진
흰 벽 창고와 전통 상점들이 잘 보존된 거리.
화려하지 않지만
옛 시간의 결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아다치 미술관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소 중 하나였다.
모든 창이 액자가 되어
정원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공간.
일본 최고 정원으로 여러 해 연속 선정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비가 내려 정원은 더 깊어 보였고,
걷는 시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3일차 아침,
면세점을 들렀다.
버스 안에서 이어진 조세호 가이드의
약에 대한 설명은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약을 고르기 시작했고,
면세점에서는 여행 경비보다
약값이 더 많이 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여행의 마지막까지도
정보와 경험이 촘촘히 이어졌다.

이후 포겔파크로 향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철새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다.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새들과
물 위에 남는 잔잔한 물길이 인상적이었다.

‘꽃과 새의 천국’이라는 별칭답게
온실에는 베고니아, 제라늄 등
1만 송이 이상의 꽃이 가득했고,
부엉이, 앵무새, 홍학, 원앙 등
다양한 새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부리가 크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
슈빌(쇼빌)의 모습은
마치 조각상처럼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찾은 유시엔 정원.
365일 사계절,
모란꽃으로 유명한 회유식 정원이다.
겨울이라 풍성한 모란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붉고 흰 동백과 소나무의 자태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모란관에서는 계절을 넘어
모란꽃을 만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이 여행은 온천과 정원,
그리고 느린 걸음의 여행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

짧았지만
분명히 오래 남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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