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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Feb 03. 2022

애 낳고도 키스가 하고 싶냐고?

질문이 남사스러워?

<섹스 앤 더 4티> 1화


"나 입술에 수포가 너무 많이 나서 벌 쏘인 거 같아

홍두깨 와이프 스탈"


"키스 좀만 해"


"...

옮았나?

간만에 하긴 했는데"


"우웩 ㅋㅋㅋ

설맞이 뽀뽀 ㅋㅋㅋ"




길고 길었던 구정 연휴. 윗입술에 수포가 3개나 생겼다. 새해 덕담을 주고받는 친구들 톡방에 입술이 퉁퉁 부었다고 우는 소릴 했더니 친구 S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키스 좀만 해, 라니? 친구가 아프다는데 이게 무슨... 그런데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우리는, 그러니까 나와 남편은 정말 키스를 했다. 타액이 섞이는 진짜 키스. 오래간만에 키스를 하긴 했다고 '시인'하자 S는 음성 지원이 되는 구역질을 했다. 이게 진짜, 키스 얘긴 자기가 먼저 꺼내 놓고.


언젠가 술자리에서 친구 C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기혼 방'에서 댓글이 수백 개가 달린 게시물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목이 된 작성자의 질문은 간단했다. 애 낳고도 키스하나요? 기혼 유자녀 여성이, 아마도 무심코 쏘아 올린 공에 게시판은 폭발할 듯 댓글이 달렸다. 질문이 비위생적이네요, 남사스럽네요, 가족끼리 왜... 이어지는 공감의 ㅋㅋㅋㅋㅋㅋㅋ들.... 전해 들은 댓글 중 최고는 "시어머니 아들이랑, 왜죠?"였다. 내가 동감과 공감의 의미로 어깨를 들썩이며 낄낄대자 옆에서 듣고 있던 비혼 친구 W가 세상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런 거냐고, 출산 뒤에도 간질간질 끈적끈적한 스킨십을 이어가는 건 불가능하냐고 물었다. 유자녀 여성 둘은 조금 미안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놓고 괜히 미안하니까 덧붙이는 말. "너는 안 그러면 되지..."


이후 주변의 유자녀 친구들에게 틈나는 대로 물었다. 누구야, 안녕. 잘 지내지? 그나저나 말이야... 너 요즘도 키스하니? 여유 자금 좀 있냐는 질문이 아니었기에 친구들은 내 질문을 '씹지' 않았지만, 20대 때 애인과의 '진도'를 물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말들을 했다. 수박 겉핥기식의 부정 말이다. M은 "그게 뭐야, 먹는 거야?"라고 했고, A는 "기억도 안 난다"라고 했다. J의 대답은 그나마 구체적이었다. "뽀뽀하면 하루 무탈하게 지나가는 거고, 키스하면 바로 자는 거지!"


예상은 했지만, 유자녀 여성들 사이에서 키스의 정의는 둘 중 하나였다.


섹스할 때나 하는 것,

또는  

섹스할 때도 깜빡하는 것.


2008년,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새해 전야 키스'의 리허설 진행을 맡은 바 있는 '키스 전문가' 안드레아 데미르잔은 키스가 우리 삶에 좋은 이유들만 묶어 책까지 낸 인물이다. 그는 책에서 키스를 하면 우리 몸에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 행복 호르몬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혈압이 내려가고 두통과 생리통은 완화되며, 격렬한 키스의 경우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충치를 예방해 주며 주름 개선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이렇게 만병통치약인 키스(할 사람)를 두고, 병원에 가는 건 시간과 돈과 에너지의 낭비 아닌가?  


입술을 포갠 채 서로에게 인공호흡(!)을 하며 때때로 물어뜯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그것'만 하고 싶어서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던 때가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20대 시절, 연애할 때 이야기다. 그런데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우는 요즘엔 (주말 아침, 당최 눈 뜰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밥 하는 게 너무 지겨워서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다. 출산 전까지만 해도 키스 전도사였건만, 지금은 키스 회의론자가 다 돼버렸다. 키스한다고 밥이 나와, 고기가 나와? 밤새 묵힌 입 냄새만 맡지...  


그런데 며칠 전엔 왜 했냐고? 그러게, 시작이 뭐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유자녀 여성들 사이에서 키스의 정의를 놓고 보면...



전자다.


쀼의 세계 수다쟁이 버전, 영화 <비포 미드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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