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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Mar 14. 2022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이해하고 싶은 여자들

여자들은 왜 미신에 빠졌을까?


별자리, 사주, 신점, 타로, 기타 등등 온갖 미신을 동원해서라도 나와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 여자들만 그래?


2020년대 <섹스 앤 더 시티>, 넷플릭스 <더 볼드 타입>


<섹스 앤 더 4티> 4화



나의 결혼식은 원숭이 때문에 꼬였다. 한 달의 반은 비인간적인 스케줄에 시달리는 월간지 에디터에게, 결혼식 날짜는 응당 마감이 끝난 뒤 첫 주말이어야 했다. 마침 원하던 예식장에 원하는 날의 적정 시간대(하객들이 결혼식 앞뒤로 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너무 이르거나 빠르지 않은 시간대)가 비어 있는 상황. 쾌재를 부르며 계약금을 내려는 순간, 남자 친구가 부모님께 전화‘는’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절차상의 보고일 거라 예상한 통화가 점점 길어지더니 그는 나와 매니저를 두고 밖으로 나갔다. 한참 뒤 매우 곤란한 얼굴로 돌아온 남자 친구는 본인조차 이해 못 한 말을 내게 전했다. “이날 원숭이가 들었대. 다른 날에 했으면 하시네….” 그때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결혼(식)은 둘만 하는 게 아니며, 한국의 관혼상제에는 숱한 미신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친구 중에는 자신보다 몇 주 빨리 결혼하는 친구의 예식에 불참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다른 사람 결혼식에 가면 복을 뺏긴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식장에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비혼 친구들은 “뭘 또 그렇게까지”라고 반응했지만, 사실 인생에서 손꼽히는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터부시하는 행동을 하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니라고? 수능 날 아침 메뉴가 미역국이라면?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거울이 깨졌다면? 접수 담당자가 하고많은 색상 가운데 빨간색으로 내 이름을 쓴 건? 랜덤으로 받은 번호가 4444인 건?


남편과 나는 기성 문화를 거부하는 X세대와 디지털 문화를 누린 N세대의 조합이었지만, 부모 세대의 노파심을 무시할 만한 배짱은 없었다. 섬에서 자란 남편은 집 안의 신을 섬기는 게 당연한 문화 속에서 컸고, 경상도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가시나가 하면 안 될 행동 강령’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대부분은 복이 나가거나 재수가 없다는 이유였는데, 애초에 내가 가진 복의 총량엔 의문이 있었지만 굳이 재수 ‘옴’ 붙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 결과 다리 떠는 버릇은 여태 못 고쳤지만 젓가락 짝을 맞추고 그릇을 포개지 않는 행동은 몸에 배었다. 10살도 안 된 애한테 남편 바람난다고 어찌나 겁을 주던지! 닭 날개를 먹으면 바람난다면서 오빠에게 닭다리를 챙겨주던 할머니는 내게 목청이 트인다는 이유로 닭 모가지를 주곤 했다. 언제는 가시나 목청이 저리 커서 어디 시집이나 가겠냐고 하더니. 내 목청이 커서 결혼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할머니 책임이다.


원숭이 든 날을 피해 일주일 미뤘더니 애매한 시간대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예식 날짜와 신혼여행 일정을 못마땅해하는 상사와 감정적으로 삐걱대다가 급기야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회사를 옮긴 것이다. 덕분에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통성명도 제대로 못 한 편집부에서 며칠 밤을 새워가며 마감을 치렀다. ‘운명’ 같은 사람과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결혼이 ‘원숭이’를 피하려다 벌어진 나비효과다. 〈미션 임파서블 3〉의 ‘토끼 발’도 아니고, 대체 원숭이가 뭐라고?


10년이 지나 이 기사를 쓰다 문득 원숭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초록창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렇다 할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그해의 ‘손 없는 날’까지 검색해봤지만, 우리가 피한 날이 손 없는 날이었단 걸 알게 됐을 뿐이었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구글 찬스를 썼는데, 웬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잔나비날’의 정의가 나왔다. “12지의 제9위인 신을 가리키는 세시풍속. 신일·원숭이날.” “정월 첫 잔나비날에는 일손을 쉬고 놀며, 특히 칼질을 하면 손이 벤다고 하여 삼간다. (중략)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신일에 ‘원숭이’란 말을 입에 담으면 재수가 없다고 하여 불가피한 경우 ‘잔나비’라고 바꾸어 말한다.” 알고 보니 내 결혼식을 좌지우지한 건 12지의 ‘신’이었다. 슬프고도 찬란한 도깨비 신(神)이 아니라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신(申).


2022년은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 얼마 전 철학관에 다녀온 A는 동행한 친구에게 호랑이 이모티콘을 선물했는데, 친구가 ‘호랑이 기운’이 부족하단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토끼 기운이 부족하대.” 들어보니 개인의 사주에서 부족한 기운을 12지 가운데 하나로 일러주는 곳이었다. “진짜 이성적인 성격의 언니가 있는데, 휴대폰 배경화면이 ‘소’ 사진인 거야. 여기서 소 기운이 부족하다 들은 거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만 믿을 것 같던 지인의 기복 행위가 얼마나 인상적이던지, 창업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아진 절친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난생처음 사주 상담을 예약했다.


자리에 앉으니 예약할 때 남긴 생년월일시로 친구의 사주가 풀이된 인쇄물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한 가정에서 선인장처럼 자란 친구에게 “부모가 많은 기도를 하고 태어난 사람으로 천복을 타고 태어났다”는 풀이는 의아했지만, “청와대 들어가는 팔자로 자동차에 비유하면 람보르기니” 같은 말은 들어 나쁠 게 없었다. 또한 자신이 임금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남자를 깔보는데, 다행히 ‘도사님’은 남편 기 죽이면 안 된다는 전근대적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남편한테 고마워하라 그래. 나 만나서 잘된 줄 알라고” 하셨다나? 임금 자리에 있는 내 친구가 현실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말은 집주인의 “나가라” 소리였는데, 친절한 도사님은 이사하면 좋을 동네의 초성까지 알려주었다(무려 8개나!). A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즐거웠고 힘이 되는 조언도 많았다며 내게도 추천하고 싶어 했다. 도사님이 올해 재물운 있다고 했으니 기대하라면서, 토끼 이모티콘으로 춤도 추었다. 그러게, 이참에 신년 운세나 볼까?


내가 처음으로 점을 본 건 20년 전, 첫사랑에 처절하게 실패한 뒤였다.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그렇다고 아무도 안 만나기엔 하루하루 너무 외로웠던 스물한 살. 홍대 놀이터에서 다정하게 흡연을 즐기는 친구 커플에게서 눈을 돌리자 맞은편 건물 2층의 노란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주 카페였다. 속 썩이는 남편이나 자녀가 있는 중년 여성들이나 본다고 생각했던 ‘사주팔자’가 그 순간 너무 궁금해졌다. 그날 상담 끝에 내 가슴에 남은 사자성어는 ‘산전수전’이었다. 선생님은 이제 겨우 ‘산전’을 겪었고, 남은 ‘수전’을 마저 겪어야 인생의 동반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와 돌이켜보면 소름 돋는 조언. “자긴 바람기가 너무 많다. 일찍 결혼해도 이혼수가 있겠어. 웬만하면 결혼은 서른둘 이후에 해.” 맙소사, 그래서 나 한 남자랑 10년이나 연애한 거야? 서른둘에 결혼하려고? 이건 무의식이 이끈 결과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그날 이후 20년 만의 재방문이었다. 요 며칠 우울해하는 친구 B에게 “점이나 볼래?”라고 하자 정확히 한 시간 반 뒤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차로 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는데 말이다). 그사이 나는 최근 점집에 다녀온 친구에게 묻고, 지역 커뮤니티와 블로그 후기도 찾아봤지만 여기다 싶은 곳을 물색하지 못했다. 방송국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는 한 사주 카페는 후기가 형편없었다. “어리니까 일단 취직하라고 했다”, “여자는 시집부터 가라고 하더라” 등등. 인터넷 쇼핑에 뜨는 운세 관련 상품도 생각보다 너무 많아 점집 후기 카페 ‘에브리포춘’에서 검색하는 것도 일이었다. 조금 귀찮아진 나는 구관이 명관이란 마음으로 추억의 사주 카페에 다시 가기로 했다. B는 자신이 어쩌다 보니 10년에 한 번씩 점을 보고 있다며 이 또한 우주의 기운이 작용한 것이 아니겠냐며 들떠 있었다.


추억의 노란 간판에 적힌 ‘SINCE 1995’를 보고 오늘의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라 믿으며 카페에 입장. 2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카페 내부는 변한 것이 별로 없었다. 메뉴판을 펼치니 30세를 기준으로 상담 가격이 다르게 나와 있었다. 헌팅 포차 입구 컷도 아니고, 굳이 돈을 더 받을 이유가 있을까? ‘나이 할증’에는 이미 득도한 듯 B가 말했다. “이 나이는 심층 상담이 필요한 거지, 아무렴.” 우리는 (30세 이상부터) 상담비가 3만원인 평생운을 보기로 했고, 대기 시간 동안 질문할 내용을 정리했다. 현재 비혼이자 최근 이상형을 미드 〈더 볼드 타입〉의 ‘리처드’로 바꾼 B의 1순위 질문은 결혼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지만, 경력 단절 기간만 늘리는 건 아닐까 고민이 많은 나는 직업운을 먼저 적었다.


‘선생님’은 일단 우리의 이름과 만세력에서 확인한 연월일시를 육십갑자로 적었고, 짝이 있냐는 질문으로 상담의 순서를 가리는 듯했다. 내가 기혼이라고 하자 상담은 자연스럽게 비혼 퍼스트. 선생님은 오방기를 한 장씩 바닥에 눕혔다가 다시 말았다가 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B의 결혼운을 보기 시작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남자는 계속 들어오지만 눈이 천상계라 성에 차지 않는” B는 상대를 볼 때 자신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첫 번째 기준. 여기서 ‘함정’은 남들이 볼 땐 까다로운 이 기준이 전부가 아니라 기본이고, 흔히 말하는 ‘조건’ 또한 평균 이상을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어렵지.” 우리는 강하게 긍정했고, 다음으로 이어질 예언을 기대했다. 그래서 몇 월에 괜찮은 인연이 나타나나요? 그의 직업과 이름은요(초성이라도)?


하지만 이후의 대화는 점사보다는 심리 상담에 가까웠다. 원하던 ‘족집게 스타일’의 예언이 돌아오지 않자 B는 초조한 듯 이렇게 묻고 또 저렇게 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뜻밖의 고백을 했다. “지금 하는 일을 계약직으로 시작한 거, 제 인생의 첫 좌절이었어요. 그게 누군가를 만날 때 먼저 콤플렉스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럴 필요가 없었단 걸 요즘에 와서야 깨달았다고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선생님은 한 가지 문제만 붙들고 있으면 오히려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으니 그 문제는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채우는 것에 집중해보라고 했다. 해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느라 고생했으니 올해는 몇 달이라도 쉬어보라고(“어차피 평생 일할 팔자야”), 늘 붙잡고 있는 ‘착한 딸 노릇’도 에라 모르겠다 손 놓기도 하고(“그런다고 뭔 일 안 나”), 이사가 힘들다면 방 안 배치를 바꾸거나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자신을 위해 살아, 가끔은 질러도 돼.”


B가 푹 빠져 있는 〈더 볼드 타입〉 시즌 4에는 편집장 ‘재클린’이 점성술사의 면접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별거 중인 남편과 오랜만에 재회한 옛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재클린’에게 “사랑은 안전하게 가고 갑작스러운 변화는 안 된다”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변화를 감행한 후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는 ‘재클린’에게 점성술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예언과 반대로 행동할 ‘사자자리에 궁수자리 상승궁(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이라 반대로 조언했다는 것.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재클린’은 결과에 만족한다.

 

어쩌면 우리가 점을 보는 행위는 정확한 미래 예측을 기대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플 때 병원이나 심리 상담이 아닌 점집부터 찾는 사람들을 보며 명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창순은 저서 〈명리심리학〉의 프롤로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간은 한없이 자기 중심적인 존재며, 그것을 인정할 때 우린 비로소 타인에 대한 이해도 넓혀나갈 수 있다. 따라서 그처럼 소중한 존재인 나 자신이, 내 앞에 놓인 삶이 궁금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명리학은 그것에 대한 답을 주는 하나의 학문이다.”


사주와 관련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일간 이슬아〉의 ‘화살 기도’다. 이슬아 작가는 해가 바뀔 때마다 사주를 보러 가는데 “말로 먹고사는 게 불안하다”라는 그에게 한 명리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떻겠니….” 이슬아 작가는 “내 인생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음성을 들으며 어쩐지 뒤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든다”라고 적었다.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는 듯했지만 괜찮다고. 그런가 하면 무당 홍칼리는 에세이 〈신령님이 보고 계셔〉에서 “운명이란 명을 운전한다는 뜻”이라며, 운명의 여덟 글자(팔자)는 바뀌지 않지만 무한한 변주곡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많은 손님이 스스로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자기 확신이 필요해 점집을 찾기 때문에 그 사람 안에 있는 답을 끄집어내주는 무당의 역할은 좋은 친구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의 한과 흥을 풀어내는 모든 사람은 현대판 무당이고, 함께하는 자리가 굿판이다.


아, 내 인생에 ‘잔나비 효과’를 일으킨 원숭이의 의미를 찾다 못해 시댁에 전화 찬스를 쓴 이야기로 기사를 마무리할까 한다. 10년 전 결혼식 날짜를 바꾼 해프닝을 꺼내는 며느리의 전화가 당황스러웠는지 시아버지는 결국 도움말 성격의 답변을 주지 않으셨다. “찾아보니까 제주에서는 원숭이날에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는 말도 있던데요? 이날 나무를 잘라 만든 물건에는 좀이 많이 쓴다고요.” “여기 사람들이라고 그런 거 다 신경 쓰지 않아. 원숭이라고 나쁘다 하면 쓰나, 원숭이띠는 어쩌라고….” 수화기 너머의 어른은 자꾸만 내 마음을 다독이려 애쓰셨다.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유선으로 못 전한 진심을 여기에라도 적고 싶다. 마음에 담아두진 않았고요, 이해하고 싶을 뿐이에요. 이 세상엔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라도 이해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요.  






<코스모폴리탄> 2022 3월호 게재

'여자들은 왜 미신에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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