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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May 10. 2022

오빠는 바보야, 동생 결혼밖에 모르는 바보

오빠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섹스 앤 더 4티> 8화 



1.

4남매 중 막내이자, 유일한 비혼(이자 무자녀)인 A는 집안의 '숙제'다.


"니는 마, '예동생' 그래 둘 기가?"


이따금 아버지는 장남에게 전화를 넣어 숙제 검사를 하셨다. 같이 살던 셋째 언니가 결혼한 뒤 한동안 1인 가구로 살던 A가 오빠네 코 앞으로 이사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과년한 딸이 혼자 사는 게 불안했던 거지..."


A의 집 분위기로 말할 것 같으면 추억의 <개그콘서트> 코너 '대화가 필요해'였다. 가족 간의 대화가 많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 첫째 오빠와 막내 동생 사이의 대화는 업무 처리상(?)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이뤄졌다. "나는 주로 새언니랑 소통하지."


그런데 얼마 전 주말. A는 오빠와 둘이 산책을 했다. 가까이 살아도 좀처럼 둘만 있는 상황은 없던 남매가 웬일로? "새언니가 애들이랑 여행 갔거든. 엄마들 모임에서, 남편 없이." 어쨌거나 토요일에 점심이나 먹자는 제안부터 어색했는데, 다음날도 스케줄이 없었던지 집으로 놀러 왔다. 거실에 드러누워 있는 오빠가 불편한 나머지 동네 산책을 나간 것인데, 오빠가 갑자기 '숙제'를 하려고 했다.


- 니 전에 오빠가 소개해준 남자, 기억 나나?

- 누구...?

- 있다 아이가, 2년 전에.

- 아...


정확히는 2년 반 전이었다. 오빠의 사돈의 팔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주 '생뚱맞은' 인연.


오빠와 소개팅남은 부동산에서 만났다. 오빠 가족이 살던 아파트의 다음 입주자가 소개팅남이었던 것. 당시 계약을 위해 마주 앉은 사람은 오빠와 새언니, 소개팅남과 남자의 어머니였다. 오빠와 새언니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본인 명의로 아파트를 사는, 어머니와 동행한 상황으로 짐작하건대 싱글일 확률이 높은 남자를 보며 자신의 '예동생'을 떠올렸다. 옆에 앉은 어머니 역시 인품이 좋아 보였다. 이만한 조건의 남자를 어디서 찾겠는가? 부동산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까지 확인하니 이런 중매 기회는 다시 없을 것만 같았다.


오빠가 옆구리를 찔렀고, 집안의 '행동대장' 새언니가 본격적인 소개팅 '유치'에 나섰다. "우리 막내 아가씨가 정말 괜찮은데, 만나 보시겠어요?"




2.

- 뭐가 맘에 안 들었노?

- 글쎄...


당시 소개팅남은 A가 맘에 든다고 했지만 A는 그렇지 않았다. 오빠는 대체 뭐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답변을 기다리는 오빠의 눈빛이 마치 <가족오락관> 폭탄 같았다. 기억해내야만 했다. 오빠는 성격 급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니까. 제발, 컴온, 컴온! 허리업!


- 그래, 맞다! 너무 재미가 없었어!


한 시간이 억겁 같았던 어색한 만남이 떠올랐다. 하지만 질문에 답하며 돌아본 순간, 오빠는 이미 옆에 없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오빠는 성격이 급하다고. A가 글쎄, 라고 말할 때부터 여행 간 새언니에게 소개팅남의 연락처를 물었고,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번호가 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통화 버튼부터 눌렀다(!). 그리고 통화 연결음이 끝나자마자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라고 말하며 저벅저벅 앞서 걸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3.

통화를 마친 오빠는 어색하게 웃었다.


웃는다는 건, 겸연쩍다는 의미. 본인이 생각해도 괜한 짓을 했다는 것. 대체 2년 반 전에 만난 남자한테, 근황 같은 건 알 리 만무한 생판 남한테, 왜 갑자기 전화를 하느냐고 따져 묻는 건 의미가 없었다. 고향에서 막내딸 결혼만 기다리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숙제'를 하려는 장남이었다. 따져 뭘 하겠는가, '숙제'인 내 탓이지.


어쨌거나 오빠를 웃게 한 건 소개팅남의 근황이었다.


- 그새 결혼했다네? 애도 낳았대.





사진 김영선 SNS(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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