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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Mar 10. 2023

아연질색이나 아연실색이나, 애니웨이!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우정!


<일타 스캔들> 남행선 ‘애니웨이’ 모음

“아주 심장이 덜렁거려 내가, 너 그럴 때마다.”
“벌렁거리는 거겠지, 덜렁거리는 게 아니라.”
“벌렁이나 덜렁이나, 애니웨이.”
“민중의 몽둥이신 경찰 분들이 잡아 족치셔야지...”
“지팡이겠죠, 민중의 지팡이.”
“몽둥이나 지팡이나, 애니웨이.”
“뭔 사람을 스파이로 몰고 아연질색을 하고 말이야, 낸장!”
“야, 이 와중에 미안한데 아연실색 아니니?”
“아 애니웨이!”
“딱 봐도 예리해 보이니까 불면증이 있지 않을까 그런 추측을 좀…”
“예리한 게 아니라 예민한 거겠죠.”
“아니 예리한 사람이 예민하기도 하고 예민했다 예리하기도 하고 그런 거지, 애니웨이.”
“달걀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이씨.”
“달걀이 계란이야, 남행선 누나.”
“닭이 먼전지 달걀이 먼전지겠지.”
“애니웨이...”



<섹스 앤 더 4티> 14화


#비지떡은 좀 그래

C는 나의 육아 선배다.


한 번은 육아 용품 검색에 지쳐 어느 브랜드 제품을 사는 게 좋을지 전화로 물었다. C는 자신이 써 본 제품과 인터넷 카페에서 회원들이 많이 추천하는 제품 후기를 친절하게 들려주었다. 역시, 괜히 선배가 아니야?


그러면서 이것저것 사서 써보고 얻어서 써보고 한 결과 개인적으로 어느 제품이 ‘가성비’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덧붙인 선배의 주옥같은 조언.


“다 됐고, 싼 게 비지떡이야!”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지적을 해, 말아?


“그게 비지떡이면 안 되지 않아?”

“응? 싼 게 비지떡이라니까?”

“그러니까, 비지떡은 좀 그렇지 않아?

“괜히 비싼 거 살 필요 없어.”

“그렇다고 비지떡은 좀…”


몇 번의 핑퐁 끝에 깨달은 C. 수화기 건너로 숨 넘어가는 들렸다. 아 그럼 뭐지, 그거? 비지떡 말고, 장떡?


장떡이 맛있긴 한데, 장땡…



# 그거라도 잡는 심정

‘바틀’을 ‘과태료’로 듣고(11화 <날카로운 첫 ‘입뺀’의 추억> 참고), 모텔 ‘대실’을 ‘큰 방’으로 이해한(12화 <야 너도 자만추? 야 나도!> 참고) Y 이야기다.


그날 우리는 ‘세상에 이런 애인이’ 느낌으로 Y가 남자친구에게 깜짝 선물처럼 해준 일들에 대해 들었다. 군대 간 남자친구에 매일 편지를 쓰고 비행기 타고 면회 가는 친구도 보았고, 고시공부 하는 남자친구 뒷바라지 하다 30대를 맞은 친구도 보았지만, 해외 파견 나간 남자친구를 챙기는 Y의 노력은 수험생 자식을 둔 부모와 다를 바 없었다. 에로스가 아닌 아가페, 숭고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좋아서 하는 일. Y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그 사람 ‘끄나풀’인 거지, 뭐.”


3초간의 정적. 혹시 지금 ‘끄나풀’이라고 한 거야? 그 사람 어디 ‘앞잡이’니?


Y는 숭고한 사랑에 빠진 나머지 자신이 사용한 단어의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아니, 나를 ‘그것’처럼 잡는 심정이라고…”


혹시 지금 ‘지푸라기’ 말하는 거니? 여태까지 읊은 너의 배려와 헌신을 어디 한낱 지푸라기에 갖다 대? 놀린다고 말을 끊을 Y가 아니었다.


“암튼 ‘잡는’ 거라고!”


적어도 ‘동아줄’ 정도는 돼야지? 그래야 호랑이한테서 오누이도 구하지. 네가 나무꾼한테 선녀 같은 그런 이미지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이 얘기, 호랑이와 나무꾼과 선녀인가?




 

# 가슴이, 가슴이!

2년 전, 종합 검진 결과에서 유방 추가 검사 소견을 보고 겁을 먹었다.


하필 <술꾼 도시 여자들>에서 지연(한선화)이 유방암 수술을 받는 것으로 끝난 시기. 부디 지연이가 무사히 수술을 잘 마치고 다음 해 크리스마스엔 두 남자와 같이 하는(?) 소원을 꼭 이루길 바라면서 부랴부랴 유방외과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예약 당일. 주사기를 가슴에 꽂아 조직을 채취하는 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체험 후 알게 되었다. 유방 촬영술(엑스선 사진 검사)은 ‘악!’ 소리 나게 아프지만, 유방 조직 검사는 ‘으아악!’ 소리 나게 아프다는 사실을.


다행히 결과는 정상이었다.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며 내 가슴이 ‘치밀 유방’이라고 알려줬다. 말 그대로 유방의 조직이 치밀하다는 것. 유방 촬영술만으로는 관찰이 어려워 초음파 검사를 비롯한 추가검사를 권하는 상황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치밀한 구석 없는 인간이라고 자평하던 나의 가슴에 붙은 ‘치밀’ 딱지, 추적 관찰 요망.


그로부터 얼마 후. 미경이(프롤로그 <마흔 살 미경이> 참고)도 종합 검진 결과에서 유방 추가 검사 소견이 나왔다고 했다.


평소에도 종합병원인 미경이는 무척 심란해했다. 나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 동행하는 보호자로서, 유방 조직 검사를 경험한 선배로서 미경이를 안심시켰다.

“병원 갈 때 같이 가자. 근데 어디가 안 좋다는데?”


그때 미경이의 분위기는 흡사 <가을동화> 속 은서(송혜교)였다. 얼마면 되냐고 묻는 태석(원빈)에게 얼마나 줄 수 있냐고 되묻는 은서 말이다. 미경이는 힘 없는 말투로 답했다.

“자기야, 나 밀착유방이래…”


가슴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 달라, 달라, 달라!

해외여행은 우정을 시험에 들게 한다. 낯선 장소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변수들과 변덕스러운 날씨와 체력적 한계. 해외여행을 가서 친구와 내내 좋은 얼굴로 지내기란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신호가 온 배를 부여잡고 걷기와 뛰기 사이의 속도로 내 집 화장실까지 도달하는 과정만큼이나 힘들다. 말 시키지 마, 말 시키지 말라고!  


학창 시절 나이트에서 우정을 도모한 3인방(a.k.a 과태료 클럽)의 첫 해외 여행지는 방콕이었다.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때 또 만나 뽀뽀뽀 하던 우정이 흔들렸던 도시. 방콕 시티 아이 캔트 스탑 날 흔들어봐!


여행 막바지에 들른 마트. 라면 코너 앞에서 C가 내게 소리 질렀다. “그만 좀 해!”


*

내게는 고질병이 있다. 일명 ‘다르다지 병’. ‘다르다’인데 ‘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못 참고 지적한다. “틀리다가 아니고 다르다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엄연히 다른 것을 두고 자꾸 틀리다고 표현하는 우리 집 어르신들의 길고 긴 도돌이표 훈화 말씀에 대한 트라우마? 10대 시절 무릎을 꿇은 채 장시간 혼날 때마다 속으로 외쳤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요!’


어쨌거나 만 이틀 동안 “틀리지”라고 말할 때마다 “다르지”라고 바로잡는 내 교정을 견디다 못한 C는 태국라면을 고르다 말고 사자후를 토했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비타민, 활력소, 명랑 등 대체로 밝고 에너지 넘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맡고 있던 C의 흑화. 친구의 입에서 불꽃이 나오는 걸 본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알았어…”


잠시 숨 막히게 어색하긴 했지만 그 뒤로도 우리는 잘 놀고 있다. C에게 다르다지 지적을 한 건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이후로는 쓸 일이 없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C는 나만큼이나 다르다를 틀리다고 말하는 걸 못 견딘다.


*

어느덧 만으로도 마흔. 스무 살 언저리에 만난 친구들과도 벌써 20년이다. 40대의 우정은 뭐가 다르냐고?


다르다. 척하면 척, 언어 감지 능력이 넥스트 레벨이다. 현재 위치를 물었을 때 “강남인데 여기 무슨 이란길 있잖아”라고 말하면 ‘아, 테헤란로구나’ 생각하는 정도? 오랜 시간 누적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나중에 찾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아 말문이 막히는 일이 허다하다.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자는 의미로 스마트폰 검색 찬스를 쓰지 않으면 시키지도 않은 묵언수행까지 게임 옵션처럼 하고 있다. 그러다 결국 “내 말 뭔 말인지 알지?”로 얼버무리는 것이다.


알지, 알지. 조금 있으면 “거시기 머시기”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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