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고성훈

지난 3세기에 걸쳐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거대한 실험은 인류에게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선사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 세대의 자원과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선취하여 소진하는 '세대 간 가치 잠식'이라는 치명적인 모순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부채라는 이름의 장부상 허상을 타파하고, 열역학 법칙이 지배하는 정직한 물리적 실체의 세계로 귀환해야만 하는 근원적인 임계점에 서 있다. 이 책이 제안한 와트 본위제는 단순한 통화 제도의 개편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대자연과 맺어온 파괴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무한한 에너지의 순환 궤도에 문명을 동기화시키는 본질적인 사회 계약의 재건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포스 신들의 제단에서 불을 훔쳐내어 인류에게 문명의 기틀을 건설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불을 취득한 대가로 그는 바위에 결박된 채 독수리에게 고초를 겪는 형벌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 200년간의 경제사 역시 이 비극적 궤적을 답습했다. 우리는 화석 연료라는 '과거의 유산'을 과도하게 연소했으며, 동시에 신용이라는 이름 아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세대의 소득을 담보로 풍요를 샀다. 그 오만한 소진의 대가로 인류는 지금 기후 위기와 부채 폭발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위협에 직면하여 심층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부당하게 취한 자원을 내려놓고, 대기권 밖에서 쏟아지는 정직하고 무한한 태양의 빛으로 귀환해야 한다. 와트 본위제는 그 역사적 회귀를 위해 설계된 기술적 프로토콜이자 인류가 우주와 다시 맺는 불가역적인 평화 계약서다.

현대 문명은 인류의 인식 구조를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의 시간’에 예속시켰다. 복리 이자는 기하급수적인 부채 팽창을 강요하며, 유한한 지구에서 불가능한 무한 성장을 향해 문명을 폭주하게 만들었다. 와트 본위제는 인류를 이 가혹한 형벌에서 해방시켜 우주의 섭리인 ‘순환적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에너지는 한 곳에 고이지 않고 순환한다. 와트 화폐 역시 이자를 기반으로 증식하는 비생산적 존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방전되듯 소멸하여 다시 사회적 인프라로 환원되는 유기체와 같다. 부채에 종속되어 미래로 도피하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오늘 생산한 에너지를 오늘 온전히 향유하는 현재 중심적 삶이 복원된다. 태양의 리듬이 인류 경제의 호흡과 동기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와트 본위제가 이룩할 진정한 금융의 정상화다.

와트 본위제는 자의적인 인간의 정치가 아니라 대자연의 물리 법칙을 스마트 계약 코드로 이식한 ‘물리학적 금융’의 해법이다. 이 시스템에서 1 kWh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척도의 강건한 기준(Ruler)이 된다. 또한 아무리 거대한 유기체라도 중력의 한계 때문에 무한정 자랄 수 없듯이, 거대 자본이 에너지를 독점하려 할 때마다 수확 체감의 알고리즘이 발동하여 그 팽창을 구조적으로 억제한다. 전력망 접속세와 누진 차감은 징벌적 세금이 아니라 시스템의 과부하를 막기 위한 정밀한 물리적 저항값이다. 이처럼 와트 본위제는 인간의 이타심에 기대는 제도가 아니라,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정밀한 물리학적 질서 위에 세워진 견고한 자율 생태계다.

인류가 소유에 집착했던 근본 원인은 자원 결핍에 대한 공포였다. 하지만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이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보편적인 비경합적 자산으로 진화한다. 따라서 와트 본위제는 부의 패러다임을 폐쇄적인 소유에서 개방적인 접속으로 대체한다. 개인이 발전소를 소유할 필요 없이 전 세계 그리드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공동체에 기여한 실적만으로도 완벽한 생존이 담보된다. 부의 절대적 척도는 이제 금고에 얼마나 축적하였는가가 아니라, 경제 생태계 내에서 얼마나 원활하게 가치의 흐름을 창출하고 매개하는가로 전환된다.

과거 결핍의 시대에 미덕이 절약이었다면, 에너지 시대에 요구되는 미덕은 역설적이게도 제한 없는 향유다. 잉여 전력이 분출되는 순간 인간의 전력 소비는 자원 낭비가 아니라 전력망의 평형을 맞추어 블랙아웃을 방어하는 시스템 조율 행위가 된다. 기계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인간이 예술과 여가로 적극 소비해 주어야만 경제라는 엔진이 멈추지 않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로써 일하는 인간의 시대는 끝나고 유희하는 인간의 웅장한 부활이 시작된다. 즐거움의 추구가 곧 국가 경제의 기여가 되는 이 위대한 열역학적 역설은 태양 문명이 인류에게 내리는 가장 축복받은 선물이다.

와트 본위제는 고삐 풀린 금융을 물리학의 통제 아래로 복귀시킨다. 1와트코인은 정확히 1Wh의 에너지이며, 이 등가 법칙은 어떤 권력도 훼손할 수 없다. 장부 조작과 투기가 근절된 자리에 오직 순수한 엔지니어링과 혁신만이 굳건히 들어선다. 이는 기존의 경로를 이탈했던 인류가 물리학적 우주의 진리와 화해하는 역사적 의식이다. 실체에 기반하지 않은 금융은 결국 붕괴한다. 와트 본위제는 불안정한 토대 위에 지어진 거시경제를 단단한 암반 위에 다시 세우는 기초 공사다. 또한 에너지 생산 주도권이 전 세계로 분산되면 자원 패권 경쟁은 사라진다. 글로벌 슈퍼 그리드로 연결된 국가들은 서로가 서로의 배터리가 되어주는 상호확증의존의 평화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이 거대한 대전환은 기존 금융 허브가 아닌 당신의 지붕 위와 스마트폰 전자 지갑 속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수확한 전기가 가치로 치환되는 순간, 당신은 수백 년간 인류를 구속하던 부채 시스템에서 탈출한 자유인이 된다. 낡은 체제가 무너지는 소리는 요란하겠지만, 물리학의 토대 위에 세워지는 새로운 시스템은 아침 햇살처럼 조용하고 따뜻하게 스며들 것이다. 부채의 종속자로 남을 것인지, 무한한 에너지를 통제하는 자본의 주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이미 우리 앞에 놓였다. 이제 고개를 들어 그 누구도 탈취할 수 없는 무한한 절대 자본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라. 인류는 길고 어두웠던 무지의 터널을 지나 다시 가장 경이로운 태양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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