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초록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 3월부터 쭉 감기를 달고 살았으니 컨디션이 좋았던 날이 별로 없었지. 5살이면 병원에 자주 가지 않을 나이인데, 올해 새로운 어린이집에 들어가서 적응하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걸까? 팬데믹 동안 면역력을 키우는 시기를 놓쳐서 그런 걸까? 알 수 없지. 이렇게 계속 감기를 달고 살다가 어느 순간 좋아질 거라 믿어. 병원도 드문드문 다니고 약도 거의 먹지 않을 날이 오겠지. 그럴 거야.
초록이는 보통 10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드는데 어제는 저녁을 먹은 뒤부터 졸려했어. 일찍 재워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설거지를 시작했지. "애를 일찍 재워야 하는데 서둘러 설거지를 해?"라고 물을지도 모르겠어. 난 초록이를 재울 때 같이 잠들어 버리거든. 그래서 자기 전에 다음 날 아침에 필요한 그릇들을 빨리 설거지해 놓고 자야겠다고 생각한 거야.(남편이 설거지 담당인데, 남편은 점심 후에 딱 한 번 설거지를 하거든.)
초록이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의자를 끌고 와서 내 등에 업히곤 해. 정확하게 표현하면 내 목에 매달리는 거지. 울 초록이 몸무게가 17킬로야. 17킬로를 내 목의 힘으로 버티며 설거지하는 건 엄청 힘든 일이지. 그래서 체력이 좋을 땐 초록이를 업었다가 내려놨다가 하며 설거지를 하고 체력이 바닥일 땐 업히려는 초록이에게 '아니야'라고 말하며, 설거지 다 한 뒤에 업어 주겠다고 하지.
어제는 나도 피곤했어. 후다닥 설거지를 하러 싱크대 앞에 섰는데 초록이가 의자를 끌고 와서 내 뒤에 서는 거야. '아 또 업히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아니야, 엄마 설거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줘."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초록이가 내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리는 거야.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난 가만히 설거지를 했어. 내가 가만히 있으니 초록이는 내 어깨를 계속 주물주물하는 거야. 아이가 간질이듯이 주무르는 그 느낌이 참 좋았어. 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설거지를 했지. '이런 동작을 초록이가 어디서 봤나' 하는 생각에 설거지를 마친 뒤에 초록이에게 물었어. 그랬더니 초록이가 "선생님이 이렇게 엄마한테 하라고 했어요."라고 말하는 거야.
아... 너무 사랑스러웠어. 아이의 시선으로 혼자 그림을 그려봤어. 엄마가 설거지를 하네. 가서 업혀야지. 의자를 끌고 가서 업히려는데 갑자기 생각이 든 거야. 선생님이 엄마 어깨를 주물러 보라고 한 게. 그래서 초록이는 엄마 뒤에서 조물조물 어깨를 주물러 본 거지.
정말 다행이었어. 지레짐작으로 초록이가 업히려는 줄 알고 초록이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을 했다고 생각해 봐. 초록이는 내 말에 상처받았을 테고 나는 초록이가 해 주는 달달한 안마를 받지 못했겠지?
로맨틱하게 백허그하는 남편보다 초록이의 백안마가 내 마음을 살살 녹였어. 난 아이를 정말 꼭 안은 뒤 아이 볼에 마구마구 뽀뽀를 해 줬어.
"고마워! 엄마 어깨 아픈 거 다 나은 것 같아."
아이도 행복하게 웃었지. 초록이는 자기의 행동이 엄마를 이렇게 행복하게 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었나 봐. 깜짝 놀란 행복한 표정 알지? 초록이가 그런 표정을 짓더라. 그 표정을 보니 나는 더 행복해졌어. 행복은 참 가까이에 있고 참 사소한 것에 있다는 걸 초록이 덕분에 깨달았어. 이런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지. 이 유효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