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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n 13. 2023

[공개 일기] 남이섬 사고_기록 1

5월 29일에 남이섬에 놀러 갔어. 우리 아이들은 남이섬을 참 좋아하거든. 그냥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먹고 노는데도 이곳의 분위기가 좋은가 봐. 그래서 1년에 한두 번은 꼭 남이섬을 찾게 돼.


이날은 내 생일 즈음이기도 했고 연휴인데다 평소에 잘 쉬지 못하는 남편이 쉬는 날이기도 해서 남이섬에 가기로 했어. 우리 가족은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쓰는 편이라 느지막이 남이섬으로 출발했지. 3시 30분쯤 남이섬에 도착했나? 다들 남이섬을 떠날 때쯤 우린 남이섬에 들어왔어.


아이들과 이곳저곳 걸으며 돌아다니다 5시 조금 넘어서 전동 바이크를 대여했어. 작년에 아이들이 타 봤는데 재밌어했거든. 엄마 아빠는 초록이와 놀이터에 있을 테니 맑음이와 푸름이에게 전동바이크를 타고 남이섬을 돌아다닌 뒤 바이크 대여점 앞 놀이터로 오라고 했지. 조심히 타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어.


그러다 10분이 지났을까? 전화기를 보니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2번 와 있는 거야. 놀이터에서 초록이 쫓아다니느라 진동을 못 느꼈거든. 느낌이 이상했지. 보통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잘 안 받지 않고,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어도 다시 걸어보지 않는데, 이번엔 느낌이 이상해서 전화를 걸어봤어. 어떤 여자분이 받으시는데... 맑음이와 푸름이 인상착의를 말씀하시면서 우리 아이들이 맞느냐고 물으시더라.


난 우리 아이들이 그분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분이 지금 아이 상태가 심각하니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하는 거야. 위치를 대충 설명해 주는데 그쪽이 어딘지 어떻게 알아. 위치 표지판 이런 것도 없는데...


전화를 받고 있으니 저 멀리 푸름이가 뛰어오는 게 보였어. 큰일 났으니 빨리 가야 한다고 아빠를 데려갔어. 난 서둘러 초록이와 짐을 챙겼지.


남편에게 전화가 왔어. 지금 맑음이 상태가 심각하다며 울먹이더라. 여기로 오라는데 또 그곳을 모르겠는 거야. 남편이 그때 겨울에 눈썰매 타던 곳이라고 말해 줘서 그제야 위치를 알았어.


서둘러 그쪽으로 가 보니 맑음이가 언덕 밑에 쓰러져 있었어. 아...  또 눈물이 난다.ㅜㅜ 맑음이가 전동 바이크를 타고 언덕을 오르다가 바이크와 같이 추락한 거지. 맑음이가 먼저 떨어졌고 바이크가 뒤에 떨어지며 맑음이 골반을 찍었어.



맑음이는 입과 가슴 쪽으로 떨어져서 치아가 1개 빠지고 2개 부러지고 2개는 심하게 흔들리는 상태였어. 허리와 목 상태는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 일단 그 자세 그대로 있어야 하니까.

 

이곳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분이 현장을 목격했고 푸름이와 같이 119에 신고하고 남이섬 안전관리센터에도 전화해 주셨어. 정말 고마웠어.(푸름이가 나중에 그러는데, 119에 위치를 설명하는 게 문제였다고 해. 이곳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설명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니까.) 2~30분쯤 후에 119가 와서 맑음이를 들것에 실었어. 보호자가 같이 탑승해야 한다고 해서 서둘러 내가 구급차에 올라탔지. 치아를 살리는 게 제일 급하니 치과 의사 선생님이 계시는 응급실로 향했어. 강원권에는 치과 응급실이 없어서 남이섬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 쪽 병원으로 가게 되었어.


남이섬 분들이 뒤따라 겠다고 했어. 남편도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바로 오겠다고 했지. 정신없는 상황이었지만 갑자기 든 생각은, 아무래도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같이 오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았어. 남편에게 병원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아이들과 집으로 가서 일단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씻기라고 했어. 남이섬 분들도 우리가 남이섬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간다고 하니 다음 날 병원으로 오시겠다고 했지.


막히는 시간이어서 병원까지 거의 2시간이 걸린 것 같아. 119 선생님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주시더라. 심하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안전벨트도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아이를 정성으로 케어해 주시는 선생님이 정말 고마웠어. 도로의 차들도 옆으로 잘 비켜주었어. 구급차 안 작은 창문으로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졌지. 그분들의 배려가 눈물 나게 고마웠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에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맑음이를 병상에 누였어. 머리, 팔, 가슴 등 엑스레이를 몇 번 찍고 하염없이 치과 선생님을 기다렸지. 2시간 안에 치아를 다시 제자리에 넣어야 하는데 선생님은 급한 환자를 치료하느라 맑음이에게 4시간 이후에 오셨어.


치과 선생님께서 맑음이를 치과 처치실로 옮겨야 한다고 하셨어. '우리 맑음이 움직일 수 있는 거야?' 난 갑자기 희망을 가졌어. 검사 결과를 아직 듣지 못해서 지금 움직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치과 선생님께서 알아보시겠다고 하더라.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봐도 검사 결과를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치과 선생님은 바로 알아보고 오시는 거 있지. 검사 결과, 손 외에는 다른 골절이 없으니 움직이면 되겠다고 하셨어.


다른 골절은 없었지만, 맑음이는 잘 움직이지 못했어. 휠체어를 가져다가 맑음이를 겨우 앉혀서 치과 진료실로 옮겼어. 난 치과 진료실 앞에서 또 하염없이 맑음이를 기다렸지. 그러는 동안 학교 선생님과 회사에 연락을 했어. 상황을 설명하고 언제쯤 맑음이가 등교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씀만 드렸어.


맑음이는 치과 진료실에서 입술 위쪽과 안쪽 찢어진 부분을 꿰매고, 빠진 치아를 삽입하고, 흔들리는 치아를 고정했지. 2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아. 선생님께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다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치아가 잇몸에서 잘 고정되지 않을 수 있고 염증이 생겨서 잘못될 수도 있다고 하셨어. 거기다 오랜 기간 치료해야 할 거라며 나를 위로해 주셨지. ㅜㅜ 난 감사하다고 선생님께 인사드렸어.


정형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손에 깁스를 해 주시고 내과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복부 초음파를 보고 난 뒤 응급실 담당 선생님께서 오셨어.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처치는 다 했으니 이제 퇴원해도 다는 거야. 


"걷지도 못하는 애를 데리고 지금 퇴원하라고요?"

"다른 골절이 없으니 조심히 걸어갈 수 있을 거예요. 힘들다면 사설 구급차를 불러드릴 수 있어요. 대신 비용이 조금 나갑니다. 지금 상태는 사실 구급차를 타고 갈 정도는 아니에요."


"그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거예요? 학교도 갈 수 있고요?"

"힘들겠지만 못 할 이유는 없어요."


"정말 다른 골절은 없는 거예요?"

"걱정되시면 가슴 쪽 엑스레이를 한 번 더 찍어볼까요? 한번 더 찍어보고 이상이 발견되면 시티를 찍어보도록 하죠."


맑음이는 엑스레이를 다시 찍었고, 결과는 이상 없다고 나왔어. 믿을 수 없는 결과였지만, 우린 퇴원을 준비했지. 새벽 2시에 잘 걷지 못하는 맑음이를 부축해서 택시를 불러 타고 집에 도착했어. 서울 쪽으로 와서 다행이지... 강원 쪽에서 진료를 받았다면 그 새벽에 서울까지 아픈 애를 데리고 어떻게 집에 왔을까?


침대 머리맡에 수건을 깐 뒤  맑음이를 침대에 누였어. 맑음이 입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렀거든.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식탁에 앉았어. 씻을 수도 침대에 누울 수도 없었어. 잠시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어. 넋 놓고 있다 내일을 위한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오늘부터 긴 여정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 서둘러 씻고 침대에 누웠어.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었어. 내 정신은 더 또렷해져 갔어.


(이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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