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노선, 마침표, 몸, 밉다, 만족
[마지노선]
아이가 커갈수록 이 선은 자꾸 뒤로 밀린다. 아니 밀려야 한다.
사춘기 아이는 오늘도 밤을 꼭딱 새웠다.
방문을 열어보니 책상 위에는 계란껍질과 라면 냄비, 햇반 그릇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바닥에는 갈아입은 옷과 젖은 수건이 뒤엉켜 있다.
"어서 치우자"
"이것만 보고요."
여기서 내가 핸드폰을 잠그면 전쟁이 일어난다.
"거기까지만 보고 어서 치워."
나는 선을 조금 뒤로 미뤘다.
30분이 지나도 아이는 움직임이 없다.
"뭐하니?"
"아.. 나가요~"
정리는 하지 않은 채 들어온 엄마 보고 나가란다.
"여기 내 아들 방이야."
"아 진짜"
"어서 치우자."
"졸려요."
"어서"
마침내 아이 방에 질서가 잡힌다.
[마침표]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필요하다.
마침표를 찍는 삶.
마침표를 찍지 않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길어진 문장처럼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몸]
감각에 둔하다.
아픈 걸 잘 참는다.
이게 장점일 수 있지만
내 몸이 보내는 신호
내 몸의 반응에 둔하다는 말일 수도 있다.
가벼운 상처는 어딘가에 피가 묻은 뒤에야 알아차리는 둔함.
이건 내 몸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내 몸의 주인은 나인데, 나는 내 몸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다.
내 몸은 의식적으로 살피지 않는 한 잘 보이지 않는다.
수시로 괜찮은지 물어봐 주고 어떤지 살펴봐 줘야지.
[밉다]
"엄마 저 싫어요?"
"엄만 울 강아지 좋아하지~. 근데 가끔 미울 때가 있어."
"엄마 저 미워요?"
"예쁜 강아지를 왜 미워하겠어. 근데 자꾸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싫더라."
[만족]
'만족스럽다'와 '이 정도로 만족한다'의 '만족'은 의미가 다르다.
'만족을 느끼는 것'과 '만족을 느끼도록 노력한다는 것'은 천지차이다.
'만족하는 삶'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