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e Jul 30. 2022

은행에...  큐레이터요?

[은행 큐레이터 이야기 ①]


원래 기획했던 글이긴 한데 퇴사도 조금 빨라졌으니 글도 조금 서둘러서 써볼까 합니다.



독일 유학 후, 한국에 와서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은 더 냉혹했습니다. 저는 이전 레지던시 기관에서 작가들과 일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때도 매우 재미있었지만), 이번에는 작품과 함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학생 때, 프로젝트로 독일 미술관에서 작가 생애 연구와 작품 연구하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미술관과 소장품이 있을 법한 기업들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시중은행 중 한 곳의 큐레이터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은행???  니가 거길 왜?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설마 창구에서 일하는 건 아니지? 너 돈도 못 세잖아."


독일은행

사실 은행은 제가 독일에 있을 때부터, 아니 어쩜 그전 한국에서부터 약간의 로망(?)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뮌헨에는 히포페어라인은행에서 운영하는 쿤스트할레베를린에서 도이체은행에서 운영하는 팔레아 포풀레아라는 전시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항상 좋은 전시와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었고 저는 주말이면 이것들을 한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국립미술관들에 비해 크기도 크지 않아서 주말에 커피 한잔에 작품 감상하기 딱 좋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림1, 2] 뮌헨 히포페어라인은행 문화재단의 전시공간 (Kunsthalle der Hypo-Kulturstiftung)과 전시 ≪Gut-Wahr-Schön≫, 2015/2016
[그림 3, 4] 도이체방크에서 운영하는 베를린 팔레아 포풀레아 (Palais Pupulaire). 전시 ≪Infinite Energy, Finite Time≫, 2020


이뿐만 아니라 독일은행들은 올해의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를 열고, 아트페어를 후원하는 등 예술을 매계로 여러 방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옛날 사람 같지만, 저는 대학 때 친구랑 은행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시원/따뜻하고, 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은행 잡지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아래 잡지는 제가 잠시 한국에 왔을 때 "또" 은행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잡지를 보고 있는데, 한 은행원 분이 와서 재미있으면 가져가라고 준 잡지입니다.)

[그림 5] 한 은행원이 준 KEB 하나은행 잡지 표지

이렇게 저는 은행은 문화와 가깝고, 친절하며, 지적이다(?)라는 환상을 가지고 한국의 은행에 입사했습니다.


한국의 은행

제가 일하게 된 곳은 운영하는 미술관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소장품이 있었습니다.

 

그럼 은행에서 큐레이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소장 미술품을 운영, 관리합니다.

은행 내에는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전시나 행사들도 기획하기도 하며, 지점이나 여러 공간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그림 6] 본점 로비 전시 ≪감각의 재배열: 코로나 그 이후≫, 2022.

작품 구입, 매각, 기증, 수증 등을 통해 대상의 질적 향상 등을 목표하기도 하고, 일부는 사료의 경우, 이관 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귀찮아하던 일이기는 했지만 은행은 감독원의 규제를 받는 곳이기 때문에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감사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각종 검사 및 조사 등에 응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미술자문위원을 운영하고, 세미나강연 등을 진행하기도 하고, 은행에서 '미술'이란 단어만 나오면 여기저기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큐레이터'였지만, 총무부 소속의 저는 미술품이라는 자산을 관리하는 '자산관리자'였다고 도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건 저의 경우였고요.


타 은행의 경우, 사회공헌부, 홍보부, 운영지원부서에 속해 있거나, 혹은 박물관팀이 별도로 있는 곳도 있고, 아웃소싱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소속 부서의 성격이나 운영형태 목적에 따라 업무 범위나 목표가 달라지니, 수행해야 할 업무 조금씩 차이가 있겠죠.


아무래도 조직 내 전공자는 극히 소수이기 때문에 업무범위는 많아지고, 연구범위는 적어지게 됩니다. (사실 연구라 할 만한 건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장(長)의 성향 따라 달라질 수 있기는 하겠지만, 이런저런 기획에 참여하기고, 만들기도 할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Copyright : [그림 1] © Marcus Schlaf, [그림 3] © Mathias Schormann, [그림 4] © Mathias Schormann




친구들도 주변 지인들도 제가 하는 일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몇 자 끄적거렸는데 조금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이외에도 다른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말씀 주세요. 언제나 소통 환영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첫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