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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AG Jul 15. 2019

성실하다고 꼭 성공하는 건 아니던데?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 작용하는 '조절변인(moderator)'

 '성실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성실하면 대체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실하게 산다고 해서 꼭 모든 일을 성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다들 몸소 겪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성실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명제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뭐야 성실하게 살면 성공한다고 하더니 아니네!' 


 또는 명제에 대한 부정을 넘어서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통해 성공하려는 그릇된 믿음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차피 성실하게 해도 안되는데, 그냥 편법을 쓰자!'


 하지만 사실 그 명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이 해당 명제에서 '조절변인(moderator)'의 역할을 해서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절(moderation)
맛있는 것을 먹어서 행복도가 증가하는 것은 음식을 먹을 당시의 포만감에 의해 조절되게 됩니다. 도식으로 그려보면 이러한 모양이 됩니다.


 심리학에서 많이 쓰이는 연구 모형 중 하나를 꼽자면 아마 '조절모형'일 것입니다.

 다른 분야의 연구들이 그렇듯, 심리학 역시 A라는 변인이 B라는 변인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합니다. 예를 들면, 자존감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 부모의 양육 방식이 아이의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 등의 연구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런데, 사실 이렇게 단순한 연구 모형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심리학적 변인으로는 이미 대부분의 주제에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보다 조금 복잡한 모형을 연구에 사용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매개모형(mediation)과 조절모형(moderation)입니다. 


 여기서 조절모형이란, 변인 A가 변인 B에 미치는 영향을 제3의 변인인 M(moderator)이 조절한다는 뜻입니다. 즉, 변인 M의 수준에 따라 A가 B에 미치는 영향의 수준이나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변인 A)은 행복도(변인 B)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모든 상황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도에 일정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에서는 그렇지 않은 상태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행복도가 더 적게 높아질 것입니다. 이 경우에, 포만감이 조절변인 M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포만감이 높은 상태였을 경우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행복도가 조금만 증가할 것이고, 포만감이 낮은 상태였을 경우 행복도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입니다.


 다시 성실함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볼까요.                           

 성실한 사장님이 돼지갈빗집을 개업했습니다. 하지만, 성실한 사장님의 돼지갈빗집이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고 있다면 사장님의 돼지갈빗집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사장님이 성실하게 일한다 해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가게가 성공할 수 없겠죠. 사장님의 가게가 위치한 환경이 성실함과 성공 사이에서 조절변인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시험을 보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하지만, 시험문제가 교육과정을 넘어선 범위에서 출제된다면, 그 학생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시험문제 자체가 학생이 풀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이 경우, 시험문제의 범위가 성실함과 성공 사이에서 조절변인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양념돼지갈비는 자주 뒤집어 주어야 고기를 태우지 않고 맛있게 구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실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명제가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엄밀히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성실함은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때에 따라 성공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의 크기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현상들은 모든 경우에서 동일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조절변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하면서 같은 원인이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의 수준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경우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이에 어떠한 조절변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실함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아!'와 같이 성급하게 결과에 영향을 주는 원인 자체를 부정하기 전에 말이죠. 


 우리가 어떤 현상을 보았을 때, 그 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원인 1, 2, 3, 4.... 를 생각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지금까지 예시로 들었던 성실함과 성공,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행복의 관계처럼 말이죠. 하지만, 다양한 원인 1, 2, 3, 4와 그로 인한 결과 사이에 영향을 미치는 조절변인을 생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내가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성급하게 낙담하거나 그 생각 자체를 폐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곧장 떠올리지 못한 조절변인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 조절변인이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같은 방법을 통해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조절변인과 같이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많은 경험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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