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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AG Jul 25. 2019

그래서, 훈민정음 상주본이 얼마라고요?

물질적 가치의 그늘에 가려진 소중한 것들 

 얼마 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유권과 관련한 뉴스 한 꼭지를 보았습니다.

 훈민정음 상주본을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배 씨가 국가에서 1000억 원을 준다면, 훈민정음 상주본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뉴스에서는 배 씨의 인터뷰와 함께, 훈민정음 상주본의 가치가 최대 1조 원에 달한다는 정보를 추가적으로 제공하였습니다. 


사진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11/2017041100241.html


 문화재에 가격을 매기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 지자체에서 문화재를 관광상품으로 활용하였을 때 유발되는 경제적 효과를 바탕으로 문화재의 가치를 매기기도 하고, 고미술품과 같은 문화재는 경매를 통해 직접적으로 가격이 매겨지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요일 오전 지상파 방송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는 'TV쇼 진품명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품명품은 의뢰인이 자신의 소장품을 가지고 나와서 전문가들에게 감정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입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뢰품의 진위 여부를 감정하고, 가격을 매기며, 그 물건이 갖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본 프로그램이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들 머릿속에 남는 것은 숫자가 올라가는 압도적인 전광판의 모습과 의뢰품의 감정가일 것입니다.


출처 https://www.ytn.co.kr/_ln/0115_201505241840062477


 6살 유투버가 월 수십억의 수익을 올린다는 소식이 하루 종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굴 정도로 돈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것들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돈이 사회 시스템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성공한 삶은 보통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일컫고, 경제적 수준이 곧 그 사람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곤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많은 돈이 행복한 삶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돈을 비롯한 물질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가지며, 성공, 행복의 기준을 물질로 삼는 성향을 심리학에서는 '물질주의(materialism)'라고 합니다.


 물질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다른 삶의 다양한 가치들보다 물질, 돈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습니다. 자기 성장,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등과 같은 가치들을 경시하고 오로지 돈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가정에 소홀하거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도 높은 물질주의 성향은 행복과 심리적 안녕감, 인간관계, 친사회적 행동 등 삶의 다양한 부분과 부정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지적해왔습니다. 진부하게 들리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사례들이나 심리학 연구 결과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돈을 추구하는 인생의 종착지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 돈밖에 남지 않은 공허한 삶이 될 것입니다.



 훈민정음 상주본 뉴스를 보고 우리 기억 속에 남는 것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님의 애민정신과 우리의 자긍심일까요? 1조 원이라는 예상 가치일까요?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다양한 가치들을 담고 있는 문화재마저 물질적 가치로만 대변되는 시대에서 물질주의를 벗어나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물질이 범람하는 환경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물질보다 소중한 사랑, 친밀한 관계, 자기 성장 등의 가치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돈을 아예 추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선택지가 오로지 돈, 물질만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삶뿐인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여러 가치들 사이의 갈림길에서 돈과 물질이 아닌 다른 소중한 가치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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