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ho Dec 06. 2024

통화시간 27:45

전남 고흥에서 떠든 이야기

여보세요, 바빠? 

웬일은 무슨, 그냥 생각나서 잘못 눌러봤다. 통화 괜찮아? 10분? 그래 뭐 널널하네.


나 고흥. 고흥 알지? 어 고흥유자.

어흥! 같은 농담 하려던거 아니지? 하하하. 


그러게,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알잖아 나 서울에 살지 않는 서울 사람인 거. 

온지...이제 3일짼가 

사실 시간이 별로 없었어. 첫날은 시차 적응하려고 바빴고, 


무슨 시차냐니, 서울 떠나면 어디든 시차가 있지.


예를 들면 부산은 시간대는 비슷한데 초침이 서울보다 조금 더딘 느낌이야. 얼추는 비슷한데 내 걸음이, 아. 응 그래 버스카드 찍고 말해. 


응  찍었어? 아냐아냐 괜춘. 

어디까지 말했지? 아, 부산 시차. 그래서 내가 걷는게 넘 빠르다는거야. 적어도 서 너 걸음씩은 앞서 간다대. 이거 네가 한 얘기였나? 아 아니구나. 


포항? 그치 아마 갔다온지 3주쯤 됐을 걸.

좋더라. 좋은데 포항의 시간은 또 엄청 느린거야. 내가 완전 외진데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차가 세 시간 은 느린거 같더라고. 아 그리고 왜 그래 맨날 졸린지. 


고흥...은… 고흥은 좀 이상해. 

시차는 별로 없는 것 같긴 한데… 중간 중간 시간과 소리가 함께 멈춰있는 곳이 있더라고. 

아니아니, 시적인 표현이 아니고 진짜.


그, 오취 마을이라는 곳이 있거든? 

그래 그래 오취리 할때 그 오취. 냄새가 다섯가지는 아닌거 같고. 아닌가? 진짜 냄새가 다양하긴 해. 1순위는 굴 냄새고. 내가 말했나? 나 굴따러 왔다고. 

아 너한테 한 말 아니구나. 미안.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오취. 그러니까 이게 무슨 프로젝트라서 이 마을을 탐방을 해야 하는데 관광지도 아니고, 뭘 느껴야 할지도 영 막막한거야. 

정말 슴슴하달까, 그 왜 엄청 오래된 평양 냉면 맛집 가면 육수가 너무 슴슴하다 못해 읭? 하잖아. 어.어. 꼭 그런 느낌이야. 동네가 너무 슴슴해. 아,걷다보면 썩어가는 굴 껍질 냄새는 아주 강렬했다. 그거 하나는 아주 제대로 취두부 맛.


여보세요? 듣고 있지? 아. 그래 택시 내리고 말해. 기다릴게.


야, 너 아직도 택시타냐. 택시 값 엄청 올랐던데. 

그래 뭐 이시간에 어쩔수 없지. 응. 


근데 너 여기 와보면 좋을거 같애. 


아니, 갑자기가 아니고, 오늘 숙소에서 보는데 저 멀리 연두색밭이랑 거무튀튀한 바닷물 사이로 돌담길이 주욱 나 있더라고. 그런데 해가 아주 천-천히 지고 있는거야.  반 정도는 이미 컴컴하고.

 

아직 햇살이 남은 곳이 그렇게나 따듯해 보이더라고. 달려나갔지. 일부러 천-천히 걸었어. 어쩐지 음미하고 싶은 기분이어서. 


그렇게 걷는데 딱 다섯 발자국 정도 앞에서 계속 그 노랑 옷자락이 끌려가는거야. 아니, 진짜 옷이 아니고 햇살이 닿은 부분이. 시적 표현 모르냐. 쯧. 그리고 딱 다섯걸음 앞에서 왜가리들이 푸다닥 날아가고 말이지. 

다섯 개 반, 오 쩜 오 정도 거리에서는 괜찮아. 들썩들썩은 하지. 그런데 딱 다섯걸음 까지 다가가면 푸다다다닥. 완전 웃겼음.


너 그런거 좋아하잖아. 


나? 나도 좋아하지. 그런 묘한 순간. 

무튼 여기는 그런 곳이 꽤 군데 군데 있어. 재밌어. 

그래, 그러니까 

유자타령 그만하고 고흥 오는거 빠른길 찾기나 해봐. 하하하. 어. 


아, 나 이제 밧데리 별로 없다. 끊자. 


아? 우리 통화 꽤 오래 했네. 

뭐야. 너 10분 밖에 없다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