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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다복 Jul 28. 2021

실내화

마주 앉아 손 잡아 줘야 할 어린 나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여러 가지 준비물 중 실내화가 있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문방구로 갔다. 하얀색 합성 고무 재질로 되어 있는 실내화. 많은 실내화 중에서 아이 발에 맞는 실내화를 찾아 신겨 보았다. 아이는 발이 작았다. 아이 발에 맞는 실내화는 거기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작았다. 실내화에는 토끼가 달려 있다. 작고 귀여웠다.


11월이 되어 찬 바람이 불자 안에 따뜻한 천이 덧대어 있는 실내화를 찾아 아이에게 사 주었다. 아이 발이 시려우면 학교 생활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여러 가지 비교하고 또 비교해서 인터넷으로 털 달린 실내화를 사주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여러 번 물었다. “발 안 시려워? 털실내화 신은 애 또 있어?”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아이 발이 커졌으려니 하고 조금 큰 실내화를 사 주었다. 그런데 학교 담임 선생님과 상담 중에 아이 실내화가 너무 커서 수업 시간에 실내화가 벗겨지곤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곤 깜짝 놀라 헐레벌떡 뛰어가 실내화를 사 왔다. 다급했다. 아이 발에 맞는 실내화를 사야 한다. 그리곤 새 실내화를 들려 학교를 보냈다. 아이에게 계속 물었다. “괜찮아? 커 안 커? 뛸 때 벗겨져?”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일 것이다. 그만 산지 얼마 안 되는 실내화를 잃어버렸다. 천으로 된 하얀색 실내화. 실내화 없이 학교를 갈 수는 없는 일. 조심조심 엄마에게 말했다. "실내화 잃어버렸어." 그다음에 엄마는 나에게 욕을 하며 비난을 하였다. 어떻게 산 지 얼마 안 되는 실내화를 잃어버리냐고. 나는 실내화 잃어버렸다는 말을 길 가다가 한 것을 후회했다. 엄마는 길거리에서 나에게 욕을 하고 나를 야단쳤다. 집 안에서 이 말을 들었으면 조금 나았을까. 왜 나는 어리석게 엄마가 너그럽게 실내화를 다시 사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실내화 없이 학교 갈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실내화 한 켤레보다 못한 사람이다. 내 자존심의 한 부분은 실내화와 함께 잃어버렸다. 실내화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무의식은 종종 사람을 속이기도 한다. 내 어린 시절 경험으로 난 내 아이의 실내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이의 실내화를 사면서 나는 삶에서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던 거겠지. 내가 아이의 실내화를 제대로 준비해 주었기 때문에 내 삶에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을까. 아님 지금이라도 내 발에 맞는 실내화 한 켤레 사서 신어야 할 것인가. 별로 비싸지도 않은 실내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채울 수 있다면 그깟 실내화 수십 켤레라도 사서 늘어놓겠다.


멈춰서 생각해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은 실내화 그 자체가 아니다. 내 아이의 실내화를 아무리 많이 사도 내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비싸지도 않은 실내화 때문에 느낀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내 삶은 조금 더 컴컴하게 조금 더 불안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내 어린 딸에게 나의 불안과 어둠이 흘러가지 않도록 애쓰고 또 애쓴다. 그렇게 어린 내 딸을 보살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 용기 내어 손 잡아 보고 싶다. 그깟 실내화로 야단맞고 혼자 울었던 어린 나의 손을 잡아 보고 싶다. 실내화를 살짝 치우고 마주 해야 할 내 안의 외로움과 슬픔. 살피고 보살펴 줘야 할 내 안의 또 다른 나. 마주 앉아 손 잡아 줘야 할 어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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