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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북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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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Aug 27. 2023

첫 번째 토요일 in 북경


오늘 아침은 라면이다.


오전에는 샤워호스 가는 기사님이 오고, 오후에는 정수기 필터 관련해서 또 사람이 온다. 누가 방문하기로 되어있으면 자꾸 신경이 쓰이고 시계만 보게 되는 나에겐 화장실 가는 일도 후순위가 된다.



점심은 근처에 국숫집에서 먹었는데 중국음식은 내 입맛에 꽤 잘 맞는다. 우리 션은 맛만 보는 식으로 몇 젓가락 먹고는 입을 닫아버린다. 되도록이면 이제는 밥을 해서 먹어야지 싶은데, 저렇게 국수 한 그릇에 고기 한 꼬치에 6-7천 원 정도이니, 꽤 괜찮은 가성비에 안 사 먹을 수가 없다.


수타로 직접 면을 뽑아 국수요리를 하는 이 집, 또 와야지.


식사 후엔 카페에서 커피 한잔에 작은 케이크 하나를 먹었는데, 국숫집보다 비용이 더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바닐라라떼도 찾아보기 힘든 중국이다. 이참에 커피를 좀 줄여야지 다짐해 본다.


은은한 석양이 근사하던 저녁, 출장에서 돌아온 휴랑 한식 먹으러 도보 15분 거리 식당으로 슬슬 걸었다. 감자탕에 순댓국,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다. 물론 감자탕에 고기가 더 부들부들해야 하고 우거지가 듬뿍 들어가 있어야 제맛이지만, 밥 먹는 순간만큼은 한국이었다.


션이도 오랜만에 밥을 반그릇 이상 비웠다. 반찬으로 나온 고추를 굳이 먹어보겠다길래 내버려 두었더니, 입에서 불이 난다고 물만 한 네다섯컵을 마시며 고추의 매서움에 몸서리쳤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과 지내며, 말로 계속 안 돼 안 돼 잔소리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고 느끼게 해야 하는구나를 깨달을 때가 많다.


얼마 전에도 핸드폰 게임앱을 몆 개 다운로드하더니, 게임 구독을 했다고 2만 원이 결제되는 일도 발생했다. 혼을 내지는 않았다. 교묘하게 게임을 진행하며 결제를 유도한 어플에 아이가 대비를 못했을 뿐.


엄마도 그런 적 있다고 아이를 다독여줬는데, 다시는 게임 같은 것은 안 하겠단다. 가끔은 새로운 다짐을 함에 있어 이런 레슨비를 지불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레슨비는 보통 그 돈 값을 한다. (그래도 너무 억울해서 애플에 환불신청 시도하다 실패하고, 개발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놓았다. 과연 환불이 될까?)


북경은 아직까지는 참 좋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바쁜 도시는 정신없지만 또 그 안에 질서가 있다.


전에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나인데, 지금은 모든 인간이 다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며 인류애 넘치는 생각을 하고 사는 것조금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 세상을 조금 더 욕심 없이, 관대하게 바라보게 된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평소보다 더 겸손하게 행동하고 있다.


아직은 핑크빛인 북경, 언젠가 고단하고 힘들일이 몰아칠수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허니문 시기를 온전히 즐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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