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만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TV프로그램에서 미술치료사가 그림을 보면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적 문제를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일지 몰라도 제가 미술치료사라는 걸 알고 있는 지인들 중에는 아이의 그림을 가지고 와서 혹시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느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사실 그림 몇 장만으로는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미술치료사는 그림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세션 진행 중에 이루어지는 그림해석에 대해 저의 경우를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대략 3가지 방법을 동원하는데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어떻게 그렸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미술치료에서는 그림의 완성된 모습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에 대한 그림을 그릴 때 그 사람이 어떤 색을 선택했는지, 어떤 부분을 먼저 그렸는지, 그리는 동안 어떤 기분이었는지 등을 살펴봅니다. 만약 미술치료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가족에 대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을 했다면 마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내담자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주시합니다. 그 사람이 먼저 어떤 가족 구성원을 그렸는지, 어떤 사람을 그릴 때 주저하고 어려워했는지, 생략된 구성원은 없었는지, 어떤 색깔을 선택했는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이 과정에서, 그 사람이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내담자가 직접 해석하도록 돕습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림 속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림을 통해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려 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미술치료사는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적절한 질문을 통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를 들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부모님 그림 옆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면, 그 사람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어봅니다. 이를 통해 그 사람이 가족과의 관계나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속의 상징을 봅니다. 그림 속에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이 상징적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크고 어두운 나무는 두려움이나 걱정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미술치료사는 이러한 상징을 이해하고, 그림을 그린 사람이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돕습니다.
이처럼, 미술치료사의 역할은 그림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