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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자판기 Dec 26. 2023

하나. 월요병이 없음에 감사

아버지와 최강야구

우리 아버지는 42년생으로 올해 82세가 되셨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나는 아버지가 야구 선수인 줄 알았다. 주말마다 야구유니폼을 입고 먼지나게 야구를 하고 고깃집에서 기름진 고기로 먼지를 씻어내는 루틴이 자주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는 주말에 야구하는 아버지편에 우리 삼남매를 딸려보내곤 했는데 그 시간이 엄마의 유일한 휴식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덕에 나는 주말마다 진기한 경험들을 하고는 했는데 그 중 하나는 땀내나는 유니폼을 입은 시커먼 아저씨들과 남탕에 갔던 기억이다-참고로 나는 여자다. 탕에는 차마 들어가지 못했고 목욕탕 평상에서 아버지와 아저씨들을 바나나 우유를 벗삼아 기다리곤 했던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나는 비관주의자다. 요즘 나를 사로잡고 있는 걱정은 아버지의 건강이다. 밤늦은 시각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한다. 순식간에 머리가 하얘지면서 혹시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닐까 짧은 순간에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린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던 아버지는 고관절 수술과 대퇴골 골절 이후 급격히 쇠약해 지셨고 몇해 전부터는 신장투석도 일주일에 세 차례 하고 계신다. 올해만 해도 폐렴으로 입원을 하시기도 하셨고 퇴원 직후 대상포진으로 다시 병원을 오가야 했다.


그런 아버지와 우리 3남매가 최근 카톡으로 대화를 자주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최강야구를 함께 보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와 마흔을 다 넘긴 3남매가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때론 월요일에 하는 최강야구가 시작할 무렵 아버지의 톡방 등장여부로 아버지의 그날 컨디션을 짐작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음성으로 톡을 보내는 법을 익히셔서 톡의 속도가 빨라졌다. 야구를 보고 계실 때 만큼은 기운이 넘치신다. 유머감각도 살아나신다. 가끔 엄마가 카톡소리에 잠을 잘 수 없다며 우리를 타박하기도 하셨지만 밤새 잔뜩 쌓여 있는 카톡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화요일 아침을 기다리시기도 한다. 


최강야구 김성근 감독, 아버지와는 동갑이시다.

나는 예능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즈음엔 최강야구의 시즌3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일상에서 찾은 아버지와의 소소한 행복에 나는 월요병이 완치되었다. 아버지 건강에 대한 걱정 와중에도 하루하루 쌓이는 추억을 더 소중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아버지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한 최강야구 선수들과 제작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팔순의 나이에도 카톡방에 정성스레 답글을 다시고 새로운 매체에 적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의 열정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아 그리고 월요병의 재발을 걱정하는 이 비관주의자를 위해 여러분의 비법도 공유해주신다면 안심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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