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꾸준하게 뭔가를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다. 진득하게 뭔가를 계속한다는 것은 내게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를 1년 이상 꾸준히 해낸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기념할 일이다. 그런데 내 평생에 기념을 할 일이 생겼다. 그 일이란 게 무엇인고 하니, 내가 꾸준히 운동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피식 웃을 일일지 모르겠지만 운동을 하지 않던 내게는 이 일은 꽤나 큰 삶의 변화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허리디스크로 고생을 하였는데 허리디스크로 고생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요통이라는 것이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를 말이다. 병원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누워서 남은 내 삶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그때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30대에 70대 할머니 허리라니. 비관주의자인 내게는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었다. 이때부터 내 삶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거운 짐을 드는 일, 대중교통을 오래 타는 일, 한참 심할 때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힘들었고 신발끈을 묶는 간단한 일도 힘들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나를 괴롭게 한 것은 내 아이를 안거나 업어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울증도 원플러스원으로 따라왔다.
나는 요통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여러 차례 시술을 받았다. 심지어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치료에만 전념했다. 그래도 허리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만 무리하면 다시 꼼짝없이 바닥에 눕는 신세가 되고는 하였다. 그러기를 몇 년. 동생의 권유로 함께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린 시절 수영을 잠깐 배운 적이 있어서 수영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걷기와 수영을 추천해 주기도 해서 허리통증에도 도움이 되겠거니 했다.
새로운 일과가 생기는 것은 삶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었다. 수영장에 가기 위해 등교하는 딸과 함께 집을 나서는 것도 꽤 소소한 즐거움이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생각보다 큰 생활의 활력이 되어 주었다. 시작하고 얼마간은 부족한 수영실력을 키우는데 여념이 없어서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지도 않았다. 통증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수영은 체력소모가 상당히 커서 그런지 잠도 쉽게 들었고 통잠을 잤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없는 일상을 살던 어느 날 문득 나는 깨닫게 되었다.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진짜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나는 수영을 6년째 하고 있다. 그 이후로 나는 허리통증에서 꽤 자유로워졌다. 고통스럽던 나의 삶이 꽤 평범해진 것에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6년간 꾸준히 수영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나의 고통과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수용성이었다는 것이다. 딸아이의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 남편과의 미묘한 신경전, 시댁에서 들은 언짢은 핀잔 등등 내 맘이 편치 않을 때 나는 수영장에서 소위 말하는 '뺑뺑이'를 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호흡에 집중하고 물살을 느끼며 내게 편안한 속도로 수영을 하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부좌를 틀지는 않지만 나는 수영이 명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적인 명상을 할 때 다른 생각이 끼어들기 일쑤였던데 비해 수영은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다.
나는 지금 고통 속에 있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다. 내게 수영을 하자고 집요하게 설득했던 동생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6년 동안 추운 겨울의 날씨와 더운 여름 땡볕에도 매일같이 수영장을 왔다갔다한 나 자신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덧. 수영의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예쁜 수영복만 보면 자꾸만 지름신이 강림해서 나의 욕망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수태기(수영 권태기) 극복을 위한 처방이라고 둘러대지만 결국 나의 욕망을 감추기 위한 비겁한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