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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ul 29. 2021

'그림자' 양정철이 알려주는 말의 중요성

양정철, 『세상을 바꾸는 언어』, 메디치미디어, 2018


양정철은 늘 그림자에 스스로를 위치시켰습니다. 책 날개에 소개된, 정철 카피라이터의 글을 빌리자면 ‘노무현을 만나 노무현으로’, ‘문재인을 만나 문재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바로 양정철입니다. 그는 대통령의 비서였지요. 영어로 ‘Secretary’,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스럽게 숨어서 일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처음에 저자가 책을 펴냈다고 했을 때, 어떤 내용일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정치인의 지근거리에서 함께 해온 사람은 으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선언하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고 나오곤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정치 일선에 나서기 위해서 그와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양정철은 그것 대신 ‘공감과 소통의 언어’, 그리고 ‘언어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감의 언어’는 노무현의 언어입니다. 야당과 언론에 의해, 또는 지지자들에 의해서도 ‘과격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일상이 녹아 있는 공감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소통의 언어’는 문재인의 언어다. 듣는 사람을 헤아려 신중하게 말합니다. 답답할 만큼 신중하고 담백합니다. 두 인물의 언어는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 결이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노무현과 문재인의 언어가 가진 특징를 뼈대로 하여 ‘언어 민주주의’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두 대통령과의 인연을 크게 부각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두 대통령과 함께 한 자신의 삶을 애써 지우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던 법률 용어나 행정 용어들, 언론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에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차별 없는 평등의 언어, 언어 민주주의를 완성하려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보고 귀찮아할 수 있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일이 문제제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듣는 것은 실은 귀찮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불편함 없이 사용하는 수많은 언어들이 차별과 불평등, 혐오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필요한 배려와 존중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상의 무례’들을 치워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책입니다. 


요즘 ‘언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한자로 된 법조문을 한글로 고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법원에서는 딱딱한 판결문 대신 존댓말을 사용하여 주권자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차별과 혐오의 단어를 공존과 평등의 단어로 고치려는 노력 또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진정한 언어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여정에 이 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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