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구정 연휴에는 홍천 선마을에 간다.’ 외손녀를 어린이집에 하원 시키는 할머니를 위해 딸네가 제안하였다. 나는 선마을을 3년전 다녀온 적이 있어서 그 곳이 얼마나 심심한 지를 말해 주었다. 그러나 이미 외할머니와 정한 것으로 내가 다른 곳을 제안하면 혼선만 커진다. 가는 길에 손녀가 좋아 할 ‘알파카 월드’를 들렀다. 알파카는 안데스산맥 볼리비아에 많이 사는데 순하고 귀엽다. 손바닥에 놓인 먹이를 얌전히 먹는다. 먹이를 담은 종이컵 째 뺏어 제 주둥이에 걸고는 도망간다. 꽤나 성급하고 별난 놈들은 간혹 침을 뱉는다. 침이 멀리까지 튀기도 하니 근처에 갈 엄두도 안 든다. 침을 뱉다니 별의별 동물도 다 있다. 아는지 모르는지 침을 뱉던 불량배 알파카에게는 먹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기분나쁜지 또 뱉는다. 짐짓 이놈들이 내 마음을 읽고 있나? 나는 마뜩찮은 티라도 들킬까봐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본다. 하긴 알파카를 사진 찍고 만져 본 것만도 어딘가? 외손녀를 위한 거였으니 되었다. '알파카 월드'의 셔틀을 타고 내려오며 운전기사님에게 추천할 만한 식당을 슬쩍 물었다. 동홍천 IC 근처에 가면 식당이 있을 거라 했다. '길매 식당'을 가려는데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음식 잘 한다고는 들었다면서도 점잖은 기사님은 ‘가본 일은 없다’고 했다. 왜일까? 두부집이니 그저 수수한 점심이려니 했다.
요즘에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 있나? 하며 식탁에 앉아 둘러보니 실내도 깔끔하다. 늦은 점심인데 손님이 꽤 많았다. 황태구이까지 밑반찬으로 나오니 훌륭하다고 치켜주었더니 '길매 식당'의 블루리본이 등급4개라고 했다. 웬 블루리본? 그건 뭐지? 한국판 미슐랭이라 할 수 있는 블루리본은 처음 들어보았다. 아이들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은 종종 새롭다. 음식점을 스마트폰에서 찾고 리뷰까지 읽기 때문에 뭔가 특색이 있지만 늘 만족스러운 거는 아니었다. 두부전골이 뭐 거기서 거기일 텐데 하였는데 잣을 듬뿍 넣은 두부는 부드러웠다. 간장종지에도 잣이 떠 있다. 한식 밑반찬이 깔끔한 만큼 식당 주인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시골에서 훌륭한 식사를 했다. 그만큼 비싼 값이어야 걸맞겠다 싶었다. 영수증을 받아보니 생각보다 꽤 비쌌다. 식사 후 밖을 둘러보니 팻말이 있었다. 팻말의 글이 거창했다. 아까 알파카 월드의 셔틀버스 기사님이 와보지 않았다는 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러다 망하지 않나? 주인장의 자부심은 분명 아니란다. 맞다.
“모든 메뉴는 한식 밑반찬과 함께 준비되므로, 반드시 2인 이상으로 주문해야 합니다. 막국수 추가 1인분은 안됩니다. 길매 식당”
이미 시골과 도심 경계는 허물어진지 오래였다. ‘블루리본’이 무섭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도심이나 호텔이 아닌 곳에서 소소한 메뉴로도 이곳 동홍천 IC 외진 식당에서도 스마트폰의 위력을 실감하였다. 그러던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선마을로 향한다. 자석의 N S처럼 한 극極이 또 반대의 극極을 구함이다.
선마을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따로 짐을 날라주어 다행이다. 비탈길 숙소에 TV도 냉장고도 없다. LED 조명에 익숙한 탓일까 스위치를 켜도 거실은 흐릿했다. 뚫린 천정으로부터 도움을 얻는다. 실내에는 중정을 두어 나무와 풀이 자연 그대로이다. 밤에는 별을 보거나 눈이 쌓일 수도 있겠다. 이시형 박사가 촌장으로 있는 이곳은 정신과 의사로서 그의 경력과도 잘 어울린다. 건강에 대한 관심들을 높이도록 ‘불편함’도 설계되어 있다. 소식다동小食多動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라는 선마을 추천 문구이다. 가파른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계단에는 ‘계단아 반갑다!’는 팻말에 뇌, 심장 그리고 호흡기에 좋은 효과를 숫자로 적었다. 비움과 채움의 '비채 레스토랑'은 꼭꼭 씹어 먹으라고 권한다. 식탁마다 30분짜리 모래시계를 재어본다. 야채와 육류를 균형있게 차린 식탁은 소박하고 건강하다. 저녁식사 전후에는 산책코스와 요가수업을 들을 수 있다. 전망대를 향해 숲속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흥’하며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낮은 포효는 공포심을 자아낸다. 갑자기 산 속임을 실감한다. 마침 지나던 두 여인이 멈추더니 ‘멧돼지가 숲에 있는가 보다'라며 긴가민가한다. 나는 호랑이 팻말을 읽었으므로 센서가 작동하는 것이라 알려주었다. ‘대명천지에 웬 호랑이?’ 멧돼지 소리로만 들었던 두 여인이 사실 더 직관적이다. 내가 안다고 하는 근거들이 외어 아는 정도라니… 꿀꿀해진 기분이 커피 한 잔을 떠올린다. 나는 3층 카페로 간다. 사람들은 다시 소통을 원하는지 와이파이가 잡히는 1층 웰컴센터에 모인다.
카페도 통신이 차단된 곳이다. 한적하니 나는 더 좋다. 앞산 전망이 탁 트인 데다, 산을 향한 의자는 반쯤 누울 수도 있다. 외손녀가 돌아다니다 옆 의자에 따라 누워도 될 만큼 넉넉하다. 벽난로에서는 장작이 불꽃을 피우고 있다. 디지털 불꽃의 호텔 로비들과도 다르다. 유리창 밖 고구마를 구워내는 난로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까운 겨울나무들은 작대기 같고 먼 곳 나무들은 한줄기 내리그은 선이다. 줄기만으로 산을 회색빛으로 채우는데 스포츠머리 마냥 짧고 가지런하다. 계곡과 능선이 또렸해서 산 전체가 포개어진 덩어리들이다. 느긋하게 책 <에베레스트>를 읽는다. 8,850m 에베레스트의 최대 문제점은 고도 즉 높이였다. 산소가 희박하니 호흡은 턱에 차고 판단도 흐려진다. 영하 20⁰, 시속 100km이상인 강풍이 부는 날이 더 많다. 체감온도로는 죽음의 공포가 이미 곁에 있다. 실족하거나 눈사태로 매몰되면 시신마저 찾기 어려웠다. 책을 덮고 앞산을 바라보니 곧 에베레스트 정상이다.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한다. 멀리 정상 근처에서 눈 위에 점점이 악전고투하는 셰르파와 등반가들을 찾는다. 눈에 덮인 크레바스와 산사태가 났음직한 장소도 연상한다. 불과 2~3백m를 남겨둔 채, 성패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이었다. 고도만 낮을뿐 히말라야의 산세와 다를바 없으리라. 실종된 등반가의 슬리핑백은 T자로 땅에 펼쳐져 베이스캠프에 사고 메시지를 전한다.
구정 연휴에 와이파이 없어 불편하다고 여길 만한 이곳에 젊은이들이 더 많다. 그렇더라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예약하며 교통앱을 앞세우고 찾아왔다. 사실 LTE기지국 통신망은 촘촘히 깔려있어 이 골짜기에도 통신은 열려있다. 산을 멀리 도는 산책길에서 LTE통신은 잡힌다. 오히려 공중을 날아다니는 통신을 따로 차단했음이 틀림없으리라. 통신과 문자메시지와 카톡이 범람하니 공해가 따로 없다. 요즘 거실 TV를 집에서 없애는 이도 꽤 있는 듯하다. 코로나19로 익숙해진 단절이 더 큰 단절을 원하게 하는 걸까? 고립무원. 세상과 단절되기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이다. 나는 이곳에 있음으로 찍어내는 설 안부 인사에 답하지 않음이 덜 미안하다. 그런 알리바이가 되기 좋은 곳일까? 그러나 어느틈에 모든 문자와 카톡이 이미 와 있다. 답을 해도 지금 전송되지 않는다. 고요한 ‘나만의 사치’를 부리려 답하지 않는다.
역시 명절다운 명절은 지금만큼 소통이 자유롭지 않던 어린 시절때에나 좋았을까? 한동안 ‘명절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유행할만큼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시기이기도 했다. 모두 모여 안부를 묻기에도 새삼스러울 일이 없을 만큼 ‘소통의 전성시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굳이 덕담을 준비하고 직장,혼인 또는 형편과 마침 돌보건강 등 궁금하다. 그러나 물어야 하는 이도, 말해야 하는 이도 부담스럽다. 만나면 묻지 않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편안하고자 한다. '함께 그리고 따로'라는 말에 공감한다. 이곳에서는 ‘먹는 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 맘에 든다. 휴대폰이 안되니 나는 식사 때에 맞춰 가족들과 만난다는 원칙만으로 편안하다. 궁금해할 일도 없다. 기다리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 다음 여행 목적지는 아무래도 좋지만 이왕이면 TV는 물론 통신마저 두절되는 곳이면 좋겠다. 아예 카톡도 되지 않을 곳으로. 템플 스테이! 눈 내린 산사에서 묵어보자. 때 맞춰 식사만 제공되는 곳이면 어디든 좋을 것이다. 여인들은 밥 안 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고, 남자들은 '삼식이'부담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 않은가? 캠핑카로 여행하는 친구의 낯선 방식을 불현듯 따라 할 것 같다. 딸네 부부와 외손주를 함께 돌보며, 과거와는 많이 다른 낯설은 명절을 또 다시 맞고 싶다. 아직 건강할 동안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