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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채 Mar 03. 2024

너를 나보다는 잘 키우고 싶었기에……

딸에게 하는 고해성사










우리 딸이 어느덧 4학년이 되었다.

참 나와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생명체임을 체감하며 사는 하루하루이다.

뭐만 하면 '나 닮아서 그래.' 혹은 '아빠 닮아서 그래.'라고는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다들 자신의 새로운 우주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엄마보다는 아빠로부터 받은 정서적인 영향이 더 큰 편이다.

엄마를 떠올려보면 불편한 감정은 없지만, 남아있는 나의 감정을 떠올려 봤을 때 '그저 아쉬움' 그걸로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 같다.


어릴 적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변화들 속에서 나는 속으로 많이 아팠다.

중학생 때부터 머리가 하얗게 변해 새치로 가득하기도 했고, 스트레스성 폭식을 지속적으로 하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망가져가는 걸 어린 나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었다.

엄마에 대한 나의 아쉬움은 딱 거기서 드러난다.

그때의 나를 좀 더 돌봐주지 못한 점,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마다 돈 걱정부터 하는 사람으로 크게 만든 것......


물론 아이 셋에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랬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안다.

각자 나름의 최선을 다했고,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부모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 안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자식의 눈에는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게 슬프지만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시절 다른 부모님들도 그랬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삼 남매 굶어 죽이지 않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굶어 죽을 일은 없게 자라왔다. 다만, 두루 살피며 키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부작용은 여전히 남아 우리가 다음 세대인 아이들을 키울 때 여실히 드러나곤 한다.




지금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굶어 죽지 않게 하기 위한 고민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것, 받아보지 못한 무엇, 그 미지수들 속에서 그나마의 힌트를 찾자면 어릴 적 나에게 필요했던 것에서부터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면 '그게 돈벌이가 되냐?'라고 말하지 않기

-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해도 그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이해해 주기

- 아이가 어떤 게임을 좋아하고 그 게임은 어떤 게임이며 왜 그걸 하고 싶어 하는지 들여다 봐주기

- 마라탕과 탕후루를 왜 좋아하는지 함께 먹어보고 나서 이야기 나눠 보기





이토록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일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과제처럼 주어지는 게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은 타인을 돌보기 이전에 나를 먼저 돌보는 인간이라는 가정 하에 역시나 나는 내가 살고자 꼭 챙기는 부분이 있다.


그중 가장 첫 번째는 운동을 습관화하도록 돕는 일이다.

공부하느라 굽은 어깨, 내려앉은 허리 등 나중에 고치려면 배로 힘든 부분들이 있다.

나이 들어 생각해 보면 바른 자세와 체형만큼 미리미리 관리해야 하는 것도 없다 싶다.

뒤늦게 고치려면 너무 많은 노력과 그만큼의 시간이 또 필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 요즘 특별한 스트레스는 없는지 이야기 나누어 보는 일이다.

조금 크고 나니 특히나 친구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사람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나라서 다양한 친구들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이해할 부분과 조율해야 하는 부분, 잘라내야 하는 부분을 아이 스스로 깨닫고 잘 경험해 내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어려운 일인지라 어쩌면 함께 겪어 나가고 있다고 해야 하는 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해결이 어려울 때에는 친구에 대한 지나친 의지나 집착보다는 '홀로 잘 있자'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겉으로 크게 티는 안 내도 사실 본질은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분명 나에게도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사람의 행동력이란 마음의 가벼움에서 추진력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가 없어야 마음이 가볍고 운동 습관이 몸에 배여야지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데에 방해가 없다.


어른이 되고 나니 그 두 가지가 참 어렵다. 그렇게 늘 무겁고 물 먹은 솜처럼 무슨 생각은 또 그리 많은지......

적어도 내 아이만은 민들레 홀씨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는 딸 많은 집에 넷째 딸로 태어나 아들만 대학 보낸 집에서 일만 하고 산 딸이었다.

학교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는지 몇 년 전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따셨다. 그렇게 여고동창 모임도 생기고 너무나 좋아하시더라.


돌아보니 내가 공부로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면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셨던 것 같다.

물론 성적에 집착하거나 그런 엄마는 아니었다. 단지 '배우는 행위'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 같다.


아이들 키우면서 수험 생활을 시작하겠다 했을 때 유일하게 적극 응원했던 것도 엄마였다.

'너는 머리가 좋아서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딸은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머리가 좋다는 근거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로 무슨 큰 성과를 거둔 것도 없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불안에 떨고 있던 나에게 가장 큰 응원을 해주었다.

그렇게 엄마는 공부를 마치지 못했던 스스로를 딛고 '공부할 수 있는 딸'인 나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세대를 거치면서 육아의 과제는 이렇게 변화하나 보다.

엄마는 결국 최선을 다 했고, 나 역시 애쓰고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 느끼는 어떤 부분은 우리 아이의 몫이 되겠지......



각자의 세상 안에서 줄 수 있는 것.

엄밀히 말하면 나눌 수 있는 것.

그걸 함께 겪어 내는 것이 육아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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