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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n 11. 2024

야! 신병. 그날이 오냐? 나 같으면 자살한다.

https://blog.naver.com/pyowa/223475170691



1993년 6월 10일 나는 행군중이었다. 



연대급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고 있었다. 몇 번의 낙오와 수없는 실수로 나는 관심 병사가 되어버린 후였다. 


M60 삼각대와 기관총을 번갈아 메면서, 달랑달랑 거리며 걸어가는 소총수가 너무나 부러웠다. 의무병과 행정병은 자유로워 보였다. M60 삼각대는 어깨에서 쉼없이 흘러내렸고, 숨은 차고, 목이 말랐다. 뒤를 돌아보면 고참에게 방탄헬멧을 맞았다. 땀이 난다며 고참들은 수통에 있는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눈치를 보며 걸었다. 체력도 정신도 포기 직전이었다. 유일한 살길은 누군가 나보다 먼저 낙오해주는 것이었다.


군용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지나갔다. 숨이 차는데 숨쉬기 어려웠다. 탱크나 자주포가 지나가면 엄청난 매연이 뿜어났다. 이때 숨을 쉬면 죽는다. 바퀴에 타고 있는 운전병, 전차병, 의무병, 포병, 통신병 모두모두 부러웠다. 


군용트럭이 줄을 지어 나타났다. 뒤에 가득 사람이 타 있었다. 옷은 풀어헤치고 긴머리를 날리는 예비군이었다.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신병. 그날이 오냐? 나 같으면 자살한다. 하! 하! 하!' 



예비군의 그 말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일병도 까마득히 느껴지는데, 제대하는 날이 오기나 올까. 훈련중 고참에게 혼날 일을 산더미처럼 만들었다. 복귀하면 이래저래 구박받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낙오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절룩거리며 행군을 계속했다.


어찌어찌 부대로 복귀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뛰어다니며 물건들을 정리했다. 내무반 침상을 손걸레로 닦고 있었다. 티비에 속보가 떴다. 



'경기 연천군 훈련장에서 예비군 훈련 중 20명 사망'


내무반은 조용해졌다. 우리를 지나던 그 예비군들이다. 그들중 20명이 죽었다. 한치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몸이 싸해졌다. 잠깐 그들의 명복을 빌고 다시 땀흘리며 침상을 닦았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6070818234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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