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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n 15. 2024

가만히 촛불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6/7)

https://blog.naver.com/pyowa/223475554950




살다보면,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세상 모든 게 나만 빼놓고 돌아간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어디선가 몽테뉴의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책에 대해 들었다. 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차분히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돌아보라 했다. 


촛불을 생각해보자. 가만히 촛불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불길은 어떻게 올라오며, 안쪽은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흔들거리는지 본 적이 있는가. 불길의 끝에서 연기는 어떻게 퍼지는지, 냄새는 어떤지, 그림자의 흔들거림을 가만히 느껴본 적이 있는가. 거기엔 아무런 전문지식도 필요치 않다. 그리 대단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무언가 차분히 관찰하면 나의 느낌, 나의 생각이 생긴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의 검증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 순간 삶의 주인공이 된다. 내가 느끼는 것만이 나의 세상이며, 내가 느껴온 것만이 나의 삶이라는 걸 알게 된다.


차분히 관찰하고, 생각하면 느낌의 해상도가 올라간다. 삶에 대한 텁텁했던 감각이 구석구석 선명하게 느껴진다. 팔등의 솜털이 더듬이가 된 것처럼 세상이 피부로 느껴지게 된다. 그 순간 삶은 데이터같은, 헛것 같은 삶이 아니다.



생생한 삶의 순간을 느끼다보면 상상력이 따라붙는다.

'이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이 순간 뒤에는 어떤 시간이 예정되어 있을까?'

'어떤 과거로 인해 이 순간이 탄생했을까?'

'이 순간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은 내 삶에 어떤 역할을 할까?'



그러다보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에 대해서까지 상상하게 된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모두 어디선가 동시에 살아가고 있을것만 같다.


미시마 유키오는 예민한 삶의 감각으로 고해상도의 세상을 그려낸다. 죽어버린 '우이코'를 불러내어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삶의 순간의 의미를 찾아낸다. 이미 존재하는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현재를 관찰한다. 



아침에 대한 묘사만 보아도, 미시마 유키오의 해상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아침의 하늘에는 격렬한 아침놀의 흔적이 있었다. 푸른 하늘에는 군데군데 아직 붉은빛을 띤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구름이 아직 수줍음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무들은 간밤의 비에 젖어 있었다. 관목 잎사귀 끝에 매달린 수많은 이슬에는 아침놀의 잔영이 비쳐, 때아닌 담홍색 열매가 열린 것처럼 보였다. 이슬을 엮은 거미줄도 아련히 붉은빛을 띠며 흔들리고 있었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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