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묻다, 서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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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인쇄술에 기대어 악보라는 시장을 개척해냈다. 베토벤은 더 이상 작곡의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자유로이 작곡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팔리는 악보를 작곡할 수 있었다.
음반시장이 등장하자 선호되는 연주가가 주인공이 되었다. 이전에도 유명한 연주가는 있었지만, 사람은 한 명이므로 여러 곳에서 연주할 수는 없었다. 음반시장은 유명 연주가의 음악을 어디에나 흘러나오게 만들 수 있었다. 음악의 주인공은 작곡가에서 실력있는 연주가로 바뀌었다. 엄밀히 말하면 팔리는 연주가가 주인공이었다.
건축도 의뢰인을 기다려 의뢰인의 요구대로 건물을 만들었다. 건축가는 의뢰인을 기다리는 숙명을 벗어날 길이 없었고, 의뢰의 대상이 건축가의 용도였다. 건축가는 의뢰인의 종속변수였다. 기술의 발달로 건축의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잉여자본의 축적으로 고비용 건축이 가능해졌다. 도시를 만들고, 공적 공간이 늘어갔다. 용도를 넘어서는 것들이 요구되었다. 팔리는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의뢰인의 요구만을 기다려서는 안 되었다. 건축가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건축가는 용도를 넘어서는 기능funtion에 집중했다. 건축가는 사회의 한 기능을 담당할 건축과 도시와 사회를 제시했다. 이러한 도전이 성공하고 나서야 팔리는 건축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경쟁력이란 실력뿐만 아니라 시장 적응 능력을 포함하는 말이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용도, 나의 기능은 무엇인가. 의뢰인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의뢰인의 종속변수는 아닐까. 사회는 언제나 변하고 있을텐데,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고 있는가. 내가 팔리길 원하는 시장은 어떤 곳인가. 그 시장에서 팔릴만한 실력은 있는가. 그 시장에 적응하려 무엇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