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묻다, 서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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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교수의 세 번째 책을 읽고 있다. 두 권의 책을 놀라며 읽었듯, 지금도 놀라며 읽고 있다. 문체와 필력은 말할 것도 없고 구성이 놀랍다.
이 책은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말한다. 목차만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건물이 아닌 굳이 건축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물은 쓰임새가 있을 것인데, 쓰임새와 건축가가 부여한 '기능'은 어떻게 다른가. 건축은 결국 짓는 것 아닌가. 짓는 기술과 건축은 어떻게 영역이 나뉘어 지는가. 건축가는 짓는 사람이 아닌 '공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드디어 용도와 기술에서 차별화되었다. 인간은 건물에서도 살지만, 건축적 공간에서 살아간다. 건축은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이 가치있게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했다. 건축은 다시 인간과 사회를 반영한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며 발전한다.
책은 '무엇인가'라는 의문문으로 시작된다. 여러 단어에 '무엇인가'를 붙여봤다. 단어가 무거워지고, 막막해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아빠란 무엇인가', '돈란 무엇인가.', '몸이란 무엇인가', '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답해야할지 가늠도 되지 않고, 아는 것 같으면서도 무엇을 물어보는 지 알 수 없는 문장이 되었다. 서현 교수는 '질문'을 구체화하며 이 책을 끌어 나간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대로, 답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우회하며 전진해 나간다.
'무엇인가?'는 다른 개념과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다. 절대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인 대비가 필요한 개념이다. 그러기 위해선 테두리가 둘러져야 한다. 구멍이 없는 테두리말이다. 경계가 반드시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 서현 교수는 '두꺼운 테두리' 개념을 끌어왔다. 경계는 있지만 테두리가 겹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하며 우기는 설득력을 보여주었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인가. 만들어 내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아름다움은 어딘가에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거나 구성해내는 것이다. 없음에서 있음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비트루이우스적 인간'을 그렸다. 아름다움과 비례는 이미 자연에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