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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는이가 Feb 03. 2021

하기 싫지 않다면 하고 싶은 거라고?

자가 테스트를 통해 나를 알아봅시다.

8시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잔 덕분에 아주 개운한 컨디션으로 작업실 문을 열었다. 집도 내 몸도 말끔히 하고 나온 터라 더욱 상쾌하다. 더불어 그이와 점심으로 사 먹은 육회비빔밥에 선짓국이 서비스되었기에, 지금 내 앞에 달달한 믹스커피가 놓여 있기에 날씨가 우중충하든 어떻든 무척 기분이 좋다. 깨끗하고 건강한 몸으로 부족할 것 없는 작업실에 들어서니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어온다.


어제는 한때 무척 잘 나가던 작가의 요즘을 보게 되었다. 일부러 찾은 건 아닌데 미술평론가의 유튜브 채널에서 우연히 만나 반가웠다. 작가는 그 미술평론가가 운영하는 갤러리에 전시를 하게 되어 겸사겸사 가볍게 인터뷰를 했나 보다. 대학생 때부터 작업이 흥하여 일찍 성공의 반열에 올랐었던 작가의 이름은 국내외의 각종 미술 전시에 빠지지 않았었다. 그가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되는 것은 당연했고 쉽게 읽히는 작품 이미지는 동화책에도 등장했다. 일약 스타가 된 젊은 작가는 많은 작가들의 부러움을 사며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경험했으리라.


그런데 작가는 미술계의 거품이 사그라들던 2008년을 기점으로 작업하는데 시간도 안 가고 재미가 없더라는 말을 한다.


작업이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 생각하면서도 그냥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업에서부터 멀리 보기와 생각하기를 열심히 하고 있더란다. (돈 안 되는 일에 왜 재미를 애써서 붙여야 하고 해야만 하는 것일까. 작품이나 작가의 명분이 돈이 되는 걸까? 나와는 개념이 다른 걸까?)


그렇다고 다른 걸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서 "아, 이게 하고 싶은 거구나." 이러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돈 버는 일 중에 딱히 하기 싫지는 않아서 한다는 건 말이 되는데 돈도 안 되는 걸 싫지 않아서 한다니... 나도 그러고 있어서 이해는 되는데 그 말 자체를 도마에 올려놓고 보면 갸우뚱하다.


[하기 싫지 않다면 하고 싶은 ] 법륜스님이 말씀하시곤 했던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 [아픈 곳이 없다면 건강한 ] 이런 논리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작가의 법륜스님의 관점과 같은 선상에 놓여지지 않는다. 하기 싫지 않음의 범위란 너무 넓지 않나?



'하고 싶다'란?

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는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초딩이 아빠에게 혼나면서도 몰래 하는 핸드폰 게임 정도의 장력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초등학생만큼은 아니더라도 계속 생각나고 대가 없이도 하고 싶은 그것이 과연 그림인가? 생각해 보았다. 작업실에 나와 있으면 자주 그이 생각이 난다. 이따 집에 가서, 혹은 아침에 눈 떴을 때 만날 수 없다면 고통일 것 같다. 이것은 확실하게 사랑인 것이다. 나에게 그림은 그렇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반면 무엇을 보고 겪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선명히 느껴지고 이것을 기록하고 싶다는 의지는 있다. 지금 쓰고 있듯이 말이다. 누가 내 생각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림과 생각이 만나는, 내가 아직 닿지 못한 그 지점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림은 도구에 불과하고 도구가 곧 작업은 아니므로 붓은 필요할 때 잡아볼까 한다.


그렇다면 '하기 싫지 않은 것'은 뭘까?

그림 수업을 만들고 그것을 알려주거나 삽화를 그려낸다던가 개똥 치우기, 빨래, 설거지, 청소.. 오래 해왔기에 내 손 안에서 능숙한 일들이다. 이것들은 해치우고 돌아섰을 때 하고 싶어서 다시 생각날리는 없다.


'하기 싫은 것'은?

통화 길게 하기, 마트 계산대에서 빠른 속도로 일처리 하기, 동물이나 어린이 혼내기, 요리, 아이쇼핑, 사람 많고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춤추기, 소주 마시기,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기, 건조한 사무실로 출근하기, 야식, 과음, 과식, 회식, 운전, 게임, 무의미한 사람과 무의미한 대화하기.


한때는 하고 싶던 것이 지금은 싫지 않은 정도로 식을 수도 있다. 시절 인연이란 말도 있는 걸 보면 당연한 걸 지도 모르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려면 의식을 깨는 부지런함이 필요한가 보다. 하고 싶은걸 정확히 알아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짧더라도 굵게 살다가 죽고 싶다. 그런데 이거 쓰는데 세 시간이 훌쩍 지났네?







[ 자가 테스트를 통해 나를 알아봅시다. ]

1.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2. 보상을 전제로 기꺼이 하는 것은?

3. 돈을 넉넉히 준대도 한 번 고민하게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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