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고도 씁쓸했던 Why not
미술계에서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아는 대부인 그가 진두지휘하는 집단에 나는 인턴연구원이란 말단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대부의 지시를 직접 받아 아이디어를 내고 이미지를 만드는 총괄 업무를 하게 됐으며 사무 담당인 상사에게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툴을 알려주는 것도 내 업무가 되어버렸다. 두 달이 지나고 여전히 인턴 월급을 받고 있던 때 새로 입사한 작업자 동생들이 점심시간에 반짝이는 눈을 하고 사무실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는데 작업자 모집공고에 컴퓨터 그래픽도 배울 수 있다는 혜택 같은 조건이 붙여진 모양이었다. 일하다가 궁금한 걸 물어보면 모를까 업무 공간도 다른데 A부터 Z까지 체계적으로 수업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작업자 동생들은 저 아래 잔디밭 한켠의 대규모 작업장에서 일했다. 작업장 앞에 펼쳐진 너른 뜰 곳곳에는 대부의 웅장한 작품이 놓여 있어서 마치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잘 가꿔진 동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입구에는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쓰여있는 큰 표지판과 찢어 죽일듯 짖는 개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나와 상사는 동산 중간쯤 놓인 컨테이너에서 일했고 동산 꼭대기에는 대부의 벽돌집과 전면 유리로 된 실내전시장 있었다. 기억을 더듬자니 영화 ‘기생충’의 장면 장면이 이어진다. 벽돌집의 잔디밭에서는 버버리 조끼를 입은 골든리트리버가 훈련사에게 주 2~3회 개인 레슨을 받고 있었다. 그 개가 흙탕물을 잔뜩 묻히고 사무실에서 뒹굴다 가면 대걸레로 닦아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대부의 가족으로는 골든리트리버외에도 사모님과 유학 다녀온 백수 딸, 그리고 앵무새가 있었다. 앵무새는 앵무새답게 사람 말을 잘 따라 했다. 특히 ‘와이나~앗’을 자주 소리 냈다. 대부 가족의 대화에서 의견이 오갈 때 와이낫은 조사처럼 수시로 툭툭 튀어나왔고 억양마저 귀에 꽂히니 앵무새에게도 각인이 되었나 보다. 그때는 그게 '웃기다' 하고 말았는데 깊이 생각해 볼 일이었다.
왜 안 되겠어? 해봐~
그렇다. 그 가족에게는 ‘왜 안 되겠어? 다 되지. 해봐~’라는 마인드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해봤는데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걸 또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까 실패와 절벽이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재력이 실패에 대한 쿠션 역할을 해주니 경험에 대한 허용범위가 넓어지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서 대대손손 무의식 깊은 곳에 OK와 YES가 자리 잡은 거겠지.
'너 또 그런 거 하냐, 그거 해서 뭐 하게, 쌀이 나와 돈이 나와, 안 돼, 못써, 하지 마.'라는 말을 이 나이 되도록 엄마로부터 듣고 사는 나. 안전지대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면서 실패하지 않도록 걱정해 주고 위한다는 명목하에 나도 엄마에게 배운 대로 남편에게 똑같이 해왔었다. 활활 타오르는 창의력에 재 뿌리고 태클 걸기를 이제는 경계하고 있으므로 과거형을 쓴다.
대부의 작업장에서는 인턴 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나왔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 찾아 간 거였는데 앵무새의 말 외에는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부는 1년의 1/3을 영국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곳에서 구해 온 일본이나 영국 거장의 작품집에서 짜깁기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일, 그게 내 업무였다. 예닐곱 개의 이미지를 만들면 그중 하나를 대부가 골라 작업장으로 내려보냈다. 거장의 작품에서 무슨 정신을 이어가려 했던 건지, 만들어진 이미지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마우스를 잡았는데 등 뒤에서 대부가 쾌재를 부르며 입장했다. 내 상사와 작업장 지휘자가 양 옆에서 함께 박수를 쳤다. 그게 누구든 사람의 죽음 앞에서 보란 듯이 그러는 건 나로서 상상밖의 일이었다. 정치성향이나 이모저모로 유추해 보건대 대부는 친일 후손이 아니었을까. 인간적인 실망감과 내가 살아온 세계와 너무 다른 이질감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쳐졌다. 또 내가 맡은 업무에 비해 월급이 적었으니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일을 그만두겠다 했을 때 시원하게 보내주지 않아서 사실은 프랑스로 유학 갈 계획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때 대부는 프랑스와 프랑스에 가있는 제자 험담을 험하게 해댔다.
골든리트리버에게도 외치던 와이낫은 남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