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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삐약이 Feb 24. 2024

결핍이 빚어내는 삶

음대 생존기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명품 가방을 걸치고 오는 동기들이 어찌나 많던지. 지역의 유명한 기업 대표의 자녀들과 그들의 화려한 명품 컬렉션, 부모님이 시립교향악단 단원이셔서 각종 연줄은 보장된 사람들, 아버지가 잘 나가는 의료계 종사자이거나 지역 유지셔서 너끈한 지원에 어려움이 없던 친구들 등등 재력이 뒷받침 된 선후배, 동기들이 참 많았다.


특히 나는 매일 다른 명품 가방을 들고 등교해서 각각의 브랜드와 가방 라인, 그리고 가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벌써부터 명품에 해박한지에 대해 입을 떡 벌리고야 말았다. 이 나이에 명품 가방 하나 없는 내가 당연한 게 아닌가? 내가 잘못된건가? 아니면 저들이 당연한 건가?라는 고민을 꽤 많이 했던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함께 기숙사 방을 쓰던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명품은 고사하고 저렴한 마스크팩을 나눠 쓰는 등 검소함과 소박함이 가득했는데, 유독 우리 과에만 가면 다른 레벨의 자본주의 시장이 너무나 당연하게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아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다들 저렇게 돈이 많은데 왜 나만 없는건지, 이런 내 모습에 끝없는 초라함을 느껴서 학교 다니기가 힘들다는 내 동기의 고민을 풀러 교양 윤리 교수님께 상담을 청했다. 교수님은 항상 수업이 끝난 후에 이런저런 고민을 가진 우리를 데리고 생협에 가서 캔음료를 하나씩 사주시고 아주 진지하게 경청하며 고민을 들어주셨다. 따스한 인생의 지혜와 해답으로 교수님과의 대화 후엔 항상 후련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리를 떴던 것도 선명하고.


당연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비교로 힘들어할 수 밖에 없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어리디 어린 나이의 우리가 외부적인 조건에 흔들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여유있는 집안의 지원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는 친구들과 스스로 악으로 깡으로 살 길을 마련하면서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는 당연히 달랐으니까.   


당차고 적극적인 태도로 수많은 알바를 따내며 강한 생활력을 보여주며 당당하게 실력으로 교향악단의 자리를 꿰차던 후배는 내게 영감이 되었고, 나 또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대의 결과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 비록 지금의 내가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삶을 향한 근성과 태도는 저 시절의 고민과 경험을 통해 완성된 게 아닐까.


지금도 음대 선후배, 동기들의 삶을 보면 타고난 환경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잘 살아가는 각자의 모습이 보인다. 짱짱한 재력을 타고난 그들의 삶이 많이 부럽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나만의 독특한 성장배경에 만족한다. 어찌보면 결핍이 있기에 더욱 다채롭고 멋진 삶이 아닐까.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행했던 수많은 노력과 도전이 나를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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