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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삐약이 Jul 05. 2024

안되면 부딪히고 본다(2)

택시 잡기 대작전

후아힌으로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 터전을 옮기기로 어렵게 결심했는데, 거기까지 우리의 큰 짐들을 옮기는 게 더 문제였다. 원래는 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금요일 퇴근 후에 짐을 옮기기로 했는데 아뿔싸, 그만 현지 선생님들의 학교 미팅이 생겨버려서 우리의 짐을 옮겨주지 못하게 되었단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방법을 찾아보자고 합심했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늘 마음의 보험은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역전 앞 택시 아저씨네. 


프란부리 기차역


학교와 후아힌 왕복 택시를 구하기 위해 짝꿍쌤과 처음 갔던 이 아저씨네(지난 에피소드에 등장). 우리 옆 초등학교에 배치된 한국인 선생님들은 현지 선생님의 친인척 찬스로 하루 왕복 500밧(바트)에 계약을 했다고 해서 우리도 하루 왕복 500밧을 목표로 하고 갔더랬다. 


처음 가서 우리의 후아힌 이주(?) 및 출퇴근 계획을 말하는데 아저씨가 하루 왕복 1,000바트를 불렀다. 너무 어이가 없었던 우리는 아무리 그래도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잘 하지도 못하는 흥정을 시작했다. 본인도 좀 너무 많이 불렀나 싶었던지 깎고 깎고 또 깎아서 결국 하루 600밧까지 가격이 내려왔다. 


하지만 진짜 그 많은 돈을 택시비로 내면서 후아힌까지 왕복을 해야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었기도 하고, 옮기게 된다면 하루도 안되는 그 몇 시간 동안 후아힌에서 묵을 새 숙소를 찾아 계약을 한 다음 이전 숙소와의 계약기간도 축소해서 말하고 그게 가능한지 확인을 받아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계약하지 않고 돌아나서며 저 프란부리 역에 철푸덕 주저앉아 한참을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프란부리 역 안. 거 참 쉽지않단 생각이 들었던 날. 아직도 안그래도 답답한데 후텁지근한 날씨가 숨을 더 턱턱 막히게 하던 그 때가 다시금 떠오른다.


오마르는 우리에게 안부를 물을 때 꼭 주말의 계획을 물어봐준다. 그래서 후아힌을 갈 계획이라고 하니, "내가 꼭 만날 수 있다고 약속은 하고 싶지 않다. 혹시 못 지킬 수도 있으니까. 그대신 혹시나 시간이 되면 한번 만나서 밥이나 같이 먹자."는 얘길 해줬다. 그렇게 오마르가 후아힌 투어를 시켜주던 날 내게 "혹시 후아힌에서 영어 잘하는 그랩 기사님 만나면 무조건 연락처 받아놔. 라인이든 뭐든. 그러고 연락하면 여기 살이가 훨씬 쉬울 거야."란 말을 해줬다. 이 말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가장 유용한 팁이 되었다.


이 얘기를 듣고 나서 나와 짝꿍쌤은 후아힌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나 후아힌에 있을 때 영어를 좀 편안하게 하시는 기사님을 만나면 무조건 연락처를 따고(?) 다니기 시작했다. 살면서 한번도 누군가의 번호를 딴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는데 거 참 사람이 이렇게나 절박해진다.




이사를 위해 후아힌행 택시를 구하기 위해 그랩 예약도 잡아보고 숙소 예약도 하루 당겨볼까 고민해보고 갖은 애를 썼다. 기존에 얻었던 택시 기사님들의 연락처들은 어떻게 됐냐고? 연락했는데 죄다 까였다. Ok 만 남기고 기약 없는 연락이 되어버린다거나, 아니면 그 날 다른 일이 있어서 시간이 없다거나 등등.. 그 상황에서 생각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역전 앞 택시 아저씨...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엔 또 아저씨가 안 계셨다. 대신 아주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영어 소통이 조금 가능하신 이웃분께서 도와주셔서 전화 통역을 해주셨다. 아저씨는 편도 600밧을 불렀고, 우리는 "팽 막~(많이 비싸요~)"을 중창했다. 우리의 콘도가 그랩가로 250바트 전후로 잡히는 곳이라 생각해서 300~350바트까지 협상해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협상에 임했는데 아저씨가 450바트 이하로는 절대로 안 한다고 해서 대차게 결렬되고야 말았다. 


목요일에 짐을 미리 옮겨두고 금요일에 와야하나 싶어서 각자의 에어비앤비 숙소 주인들에게 메세지를 남겼으나 짝꿍 쌤의 주인은 못해준다고 답을 했고, 내 숙소 주인은 읽고 씹으셨다. 방법이 없던 나머지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건 마침 왓츠앱 앱에 뜬 또다른 택시 아주머니였다.


처음 아주머니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추가했을 때 라인에는 뜨지 않아서 영 아쉬워하고 있었는데(알다시피 전화로는 절대로 소통이 불가하기 때문에) 왓츠앱에 아주머니가 떴던 게 기억나서 얼른 상세한 메세지를 남겼다. 결과는 대성공. 아주머니께서 다행히 우리가 원하던 300밧에 맞춰주시겠다고 하셔서 한 시름을 덜었다. 혹시 당일에 취소하면 어쩌시나 걱정했는데 문제 없이 오시겠단 확답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혹시 또 취소할까봐 조금의 불안감은 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분명, 안되면 또 방법이 있겠지(제발 그런 일은 없어라!!).


이제 후아힌으로 옮기게 되면 더이상 장을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갈 차편이 아무것도 없어서 현지인 선생님들께 SOS를 친다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감을 안 느껴도 될 거란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 곳 생활 초반에는 그랩 차가 안 잡혀서 절망감이 상당했었는데, 다 살다보니 길이 생기고 방법이 생긴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 태국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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