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대만, 가오슝과 포포빙(팔보빙)
대만에서 다른 음식은 못 먹고 망고빙수랑 버블티만 먹고 왔어
10년 전, 아직 대만이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하기 전에 난 2주일간 대만 1바퀴를 도는 환도 여행을 했다. 당시에 중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나 로컬 음식을 많이 맛볼 수 있었다. 귀국 후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대만 어땠어"란 그녀의 질문에 나는 음식이 맛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녀도 아마 얼마 되지 않아 대만으로 짧게 휴가 여행을 갔다. 수개월 후 다시 만난 우리는 대만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사실 대만 음식 향신료 맛이 너무 강해서... 망고빙수랑 버블티만 먹고 왔어"
그때 깨달았다. 내가 새로운 음식 시도하는 걸 좋아하고 향신료 풍미를 즐긴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라고. 이후 주변 지인들이 대만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나는 "향신료가 든 음식 잘 먹는 편이야?"라고 되묻곤 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도 향신료 맛에 눈을 뜨고 이국적인 음식에 조금 더 마음을 여는 듯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향신료 든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말하는 지인들이 꽤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향신료부터 고수까지 호불호가 강했던 음식을 썩 잘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걸 체감한다.
대만 음식을 좋아하고, 아니 건간에 모두가 호불호 없이 사랑하는 것은 바로 대만 버블티와 망고빙수다.
가오슝 90년 된 빙수 맛집 - 포포빙 (외할머니 빙수)
대만 남쪽 가오슝을 여행한다면 꼭 들러야 할 빙수 프랜차이즈가 있다. 한국 여름에 으레 설빙을 찾는다면, 외국인과 대만 현지인들은 어김없이 포포빙(婆婆冰)으로 향한다. 일본 지배를 받던 1934년, 36살 나이로 홀로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카이자오구(蔡趙固)가 작은 빙수 가게로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
여전히 본점은 1930년대 그때 모습 그대로, 친숙한 동네 빙수집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빨간 풍등에 화려한 외관이 빙수집이 아닌, 일반 중화요릿집을 연상케 하는데, 간판 속 그려진 외할머니 캐릭터로 "아 여기가 외할머니 빙수집이구나"란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포포빙엔 전통 팥빙수 스타일부터 다양한 생과일이 올라간 빙수까지, 빙수 종류가 상당하다. 특히 우리나라에 망고빙수 열풍을 일으켰던 대만 망고 빙수 역시 이곳에서 가장 잘 나가는 메뉴이기도 하다. 망고 제철엔 생망고가(망고 철이 아닌 경우엔 냉동 망고) 잔뜩 올라가는데 망고 산지에서 먹는 만큼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먹는 망고 빙수와는 당도와 식감부터 차원이 다르다.
이곳에서 가장 전통적이며 클래식한 메뉴는 "시그니처 콤비네이션 빙수(招牌综合冰)"이다. 부드러운 우유 얼음에, 망고와 딸기, 파인애플, 팥, 타로와 연유와 시럽 등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의 클래식 팥빙수에 상응한다.
과일빙수보다 팥빙수파라면 좋아할 맛, "팔보빙수"
외국인 여행객들은 포포빙에서 대부분 망고빙수를 시키지만 나 같은 경우엔 대만에서만 먹을 수 있는 빙수를 시키는 편이다. 망고 빙수에 살짝 물린 것도 있고, 제철이 아닌 시기에 방문해서 그런지 망고 빙수에 대한 기대감도 낮았기 때문이다.
팔보빙(八宝冰)은 여덟 가지 보물이 올라간 빙수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정통은 팥(红豆), 찹쌀떡(糯米), 율무(薏米), 말린 백합(乾百合), 리치(桂圆), 홍대추(红枣), 연밥(莲子), 은행(白果) 재료를 올린 빙수를 뜻하는데 요즘엔 가게마다 각각 다른 재료를 8가지 섞어 올린 것을 팔보빙이라고 부른다.
포포빙의 경우 타피오카볼, 고구마볼, 타로볼, 블랙젤리, 율무, 삶은 콩, 땅콩, 파인애플 총 8가지 재료를 사용한다. 정통방식의 팔보빙은 재료만 봐도 '건강' 그 자체인데 창시자 할머니 손주들이 현대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전국 빙수 맛집 및 홍콩까지 빙수 순회를 하면서 오늘날의 포포빙 메뉴들이 탄생했다고 한다.
클래식 빙수 재료 중 떡을 가장 좋아한다면, 팔보빙이 제격이다. 타피오카펄을 잘 쓰는 나라답게 고구마볼, 타로볼 등 쫄깃한 재료와 젤리, 약간의 식감을 더해주는 삶은 콩과 땅콩까지 눈꽃 우유 얼음과 함께 떠먹으면, 입에서 금새 녹는 우유 얼음과 토핑의 식감이 조화를 이룬다. 맛은 묵직한 편으로, 상큼하고 가벼운 과일 빙수보단 팥빙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좋아할 법한 클래식한 맛이다.
게다가 포포빙은 대만 수많은 빙수 집에서도 '손 큰 외할머니'가 퍼주는 양, 양이 정말 엄청나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세숫대야 빙수란 말이 있었던 것처럼, 팔보빙 역시 정말 엄청난 그릇에 서빙돼서 나오는데 한국에서 1인 1 빙수 그냥 가능했던 나 역시, 그 크기에 압도됐다. 디저트가 아닌, 거의 식사 두끼 수준이다.
결국 이날 빙수를 거의 다 먹은 이후 가오슝 푸얼 예술단지부터 시내까지 거의 3만보를 걸었음에도 저녁 10시까지 포만감이 지속되었다. 혹시나 포포빙을 홀로 방문한다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